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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휴대전화 이야기] 오라스콤의 좌절과 이동통신 가입자 둔화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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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08년 이집트 통신업체 오라스콤텔레콤을 끌어들여 이동통신 서비스를 재개했다. 2004년 룡천역 폭파 사고가 발생한 지 4년 만이었다. 당시 200여 명이 사망한 룡천역 폭파 사고에 대해 김정일 암살 시도라는 소문이 돌았고, 북한 당국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정보 유출을 우려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전격 중단했었다.

북한 당국의 대대적인 홍보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출발한 중동 최대 통신 업체 오라스콤의 북한 이동통신 사업은 성공했을까? 오라스콤의 투자 규모는 국외 자본의 북한 내 투자 규모로는 사상 최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 사업 10년째에 접어든 오라스콤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오라스콤은 사업 위험도가 큰 국가에서 남다른 노하우를 발휘했지만, 북한에서만큼은 ‘오늘내일 철수설’이 공공연히 나올 만큼 각종 리스크를 회피하지 못했다.

상큼한 출발

오라스콤은 2007~2008년에 걸친 북한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북한에 4년간 4억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북한에서 3세대 WCDMA 기술 기반의 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다. 2008년부터 4년 간 독점적으로 서비스 할 권리를 포함해 25년간 북한에서 이동통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라이선스였다.

오라스콤은 사업 안정성이 떨어지지만, 고성장이 가능한 국가에 진출해 통신 사업을 키워 왔다. ‘인구는 많고 이동통신 가입률은 낮은 곳을 공략하는 것’이 오라스콤 스스로 밝힌 경영 전략이다. 이 회사가 진출한 대표적인 국가에는 알제리,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방글라데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등이 있다.

북한과 이집트는 외교적으로도 각별한 사이였다. 북한은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당시 공군을 파견해 이집트를 지원했는데, 당시 공군 참모총장이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였다. 무바라크는 1981년 이집트 대통령이 됐고 2011년 축출될 때까지 30년간 최고 권좌를 지켰다.

외자 투자가 절실했던 북한 당국은 로동신문을 통해 오라스콤이 주도하는 제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환영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2008년 12월 시작한 오라스콤의 이동통신 서비스(‘고려링크’)의 가입자수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서비스 개시 첫해인 2008년 말에는 가입자수가 1694명에 불과했으나, 2009년 말 9만 명, 2010년 말 43만 명, 2011년 말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유엔(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북한의 이동통신 가입자 비율은 인구 100명당 1.77명으로 조사대상국 중 두 번째로 낮았지만, 북한의 가입자 증가 속도는 조사대상국 중 1위였다.

수익금 반출 못 해 전전긍긍

오라스콤의 북한 사업은 2013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오라스콤 입장에서는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다. 오라스콤은 북한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북한 밖으로 반출하지 못해 속앓이를 했다. 이렇게 오라스콤과 북한 당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는 날로 강해졌다. 오라스콤은 2014년 회계 보고서에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예상치 못한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데 상당한 비용을 썼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2015년 국영 기업 ‘별’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해 오라스콤을 코너로 몰았다. 별은 평양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유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온 업체로 알려져 있다. 북한 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5년 9월 16일 오라스콤이 2008년부터 약 7년 동안 북한에서 6억53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벌고도 반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라스콤은 그동안 북한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북한 공식 환율로 환산해 사업보고서에 게재해왔다. 오라스콤은 북한 당국이 정한 공식 환율로 수익금을 반출하기를 원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정한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 무려 80배나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 공식 환율이 아닌 시장 환율을 적용하면 오라스콤의 수익금은 816만 달러, 80분의 1로 쪼그라든다. 그동안 4억 달러가 훨씬 넘는 돈을 북한에 투자한 오라스콤 입장에서 ‘경영 실패’와 가까운 수치가 된다.

2017년 11월 일본 소식통들은 오라스콤이 북한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중단하고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라스콤 측은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그만큼 상황은 좋지 않다. 오라스콤은 2011년부터 그룹 계열 금융회사인 오라뱅크의 평양지점도 운영해왔지만,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와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의 대북 제재안이 나오면서 2016년 폐쇄했다.

가입자 절벽 있나

개인적으로는 오라스콤의 도전과 좌절이 주는 의미 외에 북한 이동통신 가입자 증가속도 둔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많은 통계 자료와 심층 조사를 거쳐야겠지만, 가입자 절벽이 있다는 가설을 세워두고 있다. 북한 이동통신 가입자는 2011년 100만 명을 돌파한 뒤 2014년이야 200만 명을 돌파한다. 2017년 1월 기준으로 북한 휴대전화 사용자수는 377만 명이다.

통신의 네트워크 효과와 초기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가입자 수 증가속도는 둔화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가입자 수가 500만명 전후에서 더 이상 늘지 않는다면, 북한 내에서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매월 요금을 내는 데 절대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계층이 상당히 많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북한에서 갑자기 가입자수가 늘지 않는 ‘가입자 절벽’을 만나지 않고 대다수에게 휴대전화를 보급하려면, 북한의 경제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시사점도 추가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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