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햇살 가득한 사랑의 순간을 영화로 그리다

2018. 04. 18

영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소설가 김중혁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 ‘영화당’ 98회의 주제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햇살 가득한 사랑의 순간들’입니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사랑과 욕망을 세밀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입니다. 최근 개봉해 호평 받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이 감독의 작품이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두 영화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를 이동진 평론가, 김중혁 작가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결말 혹은 클라이맥스 관련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음을 미리 양해 바랍니다.

사랑과 욕망을 뜨겁게 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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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설명 대신 묘사를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동진 :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하지 않는 영화로 유명한데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대신, 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모든 영화적 방식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를 보면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강력하게 느낄 수 있죠. 사랑이나 감정의 방향성과 에너지를 묘사하는 것이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의 핵심입니다.

김중혁 :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를 보면 미술이나 건축, 음악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대상물이 필요한 셈이죠. 요리나 식물의 잎과 같은 사물로 사랑을 표현하려면 우선 관찰력이 뛰어나야 하는데요. 감독의 치밀한 관찰을 영화 군데군데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햇살 가득하게 묘사되는 러브신

▲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 그리고 최근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세 편 모두 햇살 가득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동진 : 일반적인 러브신 공간은 어두운 침실입니다. 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격정적인 사랑의 순간을 항상 햇살 가득한 공간에서 묘사하죠. 대낮의 야외에서 혹은 실내에 있더라도 창문을 활짝 열어서 러브신을 연출합니다. 즉, 사랑은 부끄러운 무언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들은 욕망을 아름다운 생의 축복으로 묘사하는, 생의 찬가 같은 영화죠.

마음의 격랑을 담은 영화, <아이 엠 러브>

▲ 첫 번째 소개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는 <아이 엠 러브>입니다

1. 스토리 대신 감정의 파장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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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엠 러브>는 사랑이 흩뜨려 놓는 감정의 파장에 주목합니다

이동진 : <아이 엠 러브>는 사랑의 순간보다 사랑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영화입니다. 순간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 장면들이 대표적인데요. 주인공인 엠마(틸다 스윈튼)는 원래 현모양처 같은 인물이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에서 안토니오(에도아도 가브리엘리지)와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토니오와 첫 키스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죠. 포커스도 심지어 맞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해당 장면이 끝납니다.

김중혁 : 그다음 장면은 굉장히 멀리서 엠마를 잡는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앉는 엠마가 웃는지 우는지 헷갈리는데요. 화면이 점차 줌인 되면서 엠마가 혼자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카메라가 서서히 엠마를 향해 들어가듯, 사랑이라는 감정을 향해 서서히 안으로 들어가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이동진 :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죠. 사랑이 휘저었던 마음의 격랑과 파장이 <아이 엠 러브>의 핵심 주제입니다.

2. 어둠과 빛, 대조되는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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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에게 안토니오는 빛, 남편은 어둠으로 나타납니다

이동진 : 엠마에게 안토니오는 빛의 세계입니다. 엠마와 안토니오가 관계를 가질 때는 햇살 가득한 야외입니다. 오두막 안이더라도 모든 창문이 열려있어 밝은데요. 반면 남편의 세계는 대저택이고 넓지만 항상 어둑어둑합니다. 남편이 엠마와 관계를 갖는 장소는 굉장히 어둡게 묘사되어 있죠. 이렇게 <아이 엠 러브>는 안토니오와 남편을 대비되는 구조로 그려냅니다.

3. ‘사랑’이라는 새 이름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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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을 열고 나가듯 엠마는 정체성의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김중혁 : 제목이 왜 <아이 엠 러브>일까요?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결국 ‘I’m love’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엠마 자신이라 볼 수 있죠. 엠마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Love’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동진 : 말씀하신 대로 이 영화는 남편이 규정한 정체성인 엠마라는 이름을 버리고 Love라는 새 이름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떠난 엠마의 모습은 없고 열려 젖힌 현관문만 보이는데요. 사실 이 여자는 이곳에 없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결국 그녀는 인습과 관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인간의 양면을 다루는 애로틱 스릴러, <비거 스플래쉬>

▲ 두 번째 영화는 <비거 스플래쉬>입니다

1. 서로 얽히고설킨 사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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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거 스플래쉬>에서는 네 인물을 통해 삼각관계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줍니다

이동진 : 사랑하는 관계에서 가장 긴장감을 주는 건 삼각관계죠. 세 명 중 두 사람이 사랑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은 지켜보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비거 스플래쉬>는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삼각형을 계속 다르게 만듭니다. 이렇게 감정의 역학들을 종횡무진 누비는 스릴러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김중혁 : 항상 관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핵심 인물인 법입니다. <비거 스플래쉬>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콤플렉스와 질투로 가득 찬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이라는 인물이죠. 폴이 영화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것도 <비거 스플래쉬>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2. 결정적 순간을 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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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거 스플래쉬>에 종종 등장하는 모호한 장면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동진 : <비거 스플래쉬>는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특징이 담긴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그래서 모호한 장면들이 많은데요. 가령 페넬로페(다코타 존슨)와 폴이 산행을 할 때 익스트림 롱쇼트로 서정적인 풍경을 담다가, 낯선 이방인 만날 때는 갑자기 이상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죠. 그러다가 웅덩이 옆에 서 있는 페넬로페를 비춰주며 장면이 끊깁니다. 이렇듯 영화는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주인공들이 격심한 감정의 흔들림을 겪고 있다는 것이죠.

3.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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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영화 <비거 스플래쉬>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김중혁 : 저는 영화 속에서 나오는 롤링스톤즈의 노래 <emotional rescue>가 <비거 스플래쉬>의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네 사람 혹은 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제목 그대로 감정적인 구출(emotional rescue)이죠. 하지만 서로 서로 발목을 잡고 있어서 구출될 수 없어요. 영화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객들에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동진 : 카메라가 어디까지 올라가나 할 정도로 까마득하게 직부감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죠. 격동의 순간들을 보여준 직전의 화려한 장면과 대비되는데요. 욕망이 벽에 부딪히는 처참한 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인상적인 열린 결말은 꼭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햇살 가득한 사랑의 순간을 담은 두 영화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를 살펴봤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두 영화는 모두 B tv에서 보실 수 있으니, 원하는 영화를 골라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