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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기술로 의료를 업그레이드하다, SKT의 사내벤처 TF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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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텔레콤 IoT·데이터 사업부 내 바이오ICT TF 팀원인 민항준·오성은·박민서·변일수씨(왼쪽부터)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냥 걷는 게 아니라 무빙워크를 타고 가는 기분이에요.”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이하 SKT) 사옥에서 만난 박민서(40)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SKT에서 바이오 정보통신기술(ICT)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다. 이 TF는 SKT가 작년 12월 선보인 ‘스타트앳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사내벤처 1호’다. 이들이 도전하는 분야는 ‘게놈(유전체) IT’. 얼핏 봐선 IT와 관계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어떤 분야보다 IT의 도움이 절실한 곳 중 하나다.

빅데이터 처리 기반 유전체 IT솔루션을 개발해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 TF의 목표다. 박민서씨와 함께 TF 구성원인 민항준(39)⋅변일수(41)⋅오성은(33)씨를 만났다.

이미 해본 걸 잘 할 수 있겠어? 죽은 아이템도 살려낸 집념

▲ 바이오ICT TF 리더 박민서씨

도전장을 내민 것은 박민서씨다. 지난해 12월 4일. 평소처럼 사무실에 출근해 PC를 켜고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하자 대문짝만 한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제안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공고 문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뒀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박민서: “1년 전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암 환자들이 항암제 치료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알게됐죠. 환자 생체 특징을 분석해 여기 맞는 항암제를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써본 항암제부터 투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작 암 환자들 사정은 달랐어요. DNA변이, 염기 서열 정보, 질병 정보 등을 담고 있는 유전체를 검사하면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항암제를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공고를 확인한지 이틀 만에 지원서를 썼다. 한국에서 공대를 다니다 미국에서 바이오 인포메딕스 분야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IT와 BT(바이오테크놀로지)를 접목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핵심은 유전체 데이터라는 빅데이터를 처리·저장·관리하는 IT솔루션을 만들어 병원이나 분석 업체가 낮은 비용으로 유전체 분석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분석 단가를 낮추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임직원은 동료들이 올린 아이디어에 추천·비추천을 누르거나 댓글을 달 수 있다. 추천 수 100개가 넘어야 사업화 검토에 들어간다. 박 씨가 올린 아이디어는 100명 이상의 추천을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에 암초를 만났다.

박민서: “전형 중 기술 개발, 경영전략, 법무 분야 등 구성원 8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PT(프레젠테이션)가 있어요. 20분 동안 PT를 하고 난 뒤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이 ‘예전에 SKT가 했던 것을 왜 또 하려고 하느냐’였어요. 앞서 회사가 바이오를 접목한 사업을 시도했다 접은 전례가 있었거든요. 당시 ‘바이오’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는 IT를 활용한 정보 처리와 저장에 초점을 뒀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박사·정보처리 전문가·벤처 출신이 뭉쳤다

▲ 바이오ICT TF 소속 직원들

TF 구성원들 모두 경력 입사자다. 박민서씨는 피아노를 전공하다 다시 공부해 공대로 입학했다.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으로 석사를 하고 해외 대학으로 건너 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ICT기술원 내 소프트웨어기술원에서 호흡을 맞춘 변일수씨와 민항준씨는 각각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반도체 회사에서 정보 처리 및 저장을 담당한 전문가다. 박 리더가 호흡을 맞춰온 동료들을 삼고초려했다고 한다. 오성은씨는 TF가 꾸려진 뒤 사내 공모를 통해 지원했다.

변일수: “ETRI에서 4년간의 연구원 생활과 IT 관련 개인사업을 접고 SKT로 오게 됐죠. 리더가 사내벤처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 고민하거나 망설이지는 않았어요. 1년 동안 박 리더와 일한 경험도 있었고 서로 얘기가 잘 통했거든요.”

민항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바이오 분야가 좀 생소하긴 했지만 박 리더 얘기를 들으면서 잠재력이 충분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류 생명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도 느낌이 남달랐고요.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TF가 공식 출범 3개월 차, 소기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유전체 분석 1위 업체인 마크로젠과 인공지능(AI) 유전체 분석 솔루션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마크로젠이 보유한 유전체 데이터를 SK텔레콤의 AI 기술로 분석하고 이 데이터를 축적,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SK텔레콤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면 분석 시간을 최대 10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박민서: “퍼즐 박스를 보면 작은 조각들과 완성된 그림이 들어있죠. 사용자들은 그림을 보면서 맞춰가고요. 유전체 데이터 분석도 비슷한 원리예요. 유전체 데이터는 약 9억 개 조각들로 이뤄졌어요. 분석을 하려면 일단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야 하죠. 이 그림을 만드는 과정에 엄청난 양의 컴퓨팅 파워가 들어갑니다. SK텔레콤의 AI를 활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축적·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이들은 현재 수천만원에 달하는 서비스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민서: “유전체 분석을 위해 피나 침을 뽑아서 분석하는 비용이 상당히 비싸요. 하지만 우리 솔루션을 이용하면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유전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병원이나 바이오업체들이 혁신적인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IT기술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 바이오ICT TF 소속 변일수·민항준·오성은씨

‘20년 보상’ 약속한 회사, ‘댓글’로 응원하는 임원

우리나라 사내벤처 제도는 2000년대 벤처 붐 이후 IT 업체를 중심으로 태동했다. 삼성SDS 사내벤처로 시작해 연 매출 4조 원 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 옛 LG데이콤에서 나와 연간 거래액 3조 원의 중견기업으로 큰 인터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SK는 좀 더 빨랐다. 최종현 선대회장 지시로 1970년대 사내 연구소를 세우고 신기술을 개발한 직원들에게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 곰팡이 살균제 ‘팡이제로’는 1990년대 초 유공바이오텍사업팀 연구원들이 개발해 사업화한 사례 중 하나다.

SKT는 지난해 ‘뉴 ICT 컴퍼니’라는 기조 아래 사내벤처 제도인 ‘스타트앳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새로운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의 아이디어 발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등록하면 임직원이 댓글을 달거나 의견을 표출한다. 회사가 정한 기준에 부합한 아이디어는 전문가 인터뷰를 거쳐 최종 사업화 대상으로 선정된다. 집단지성을 통해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것이다. SKT 관계자는 “구성원이 자기일 뿐 아니라 전사 차원의 사업에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창구가 필요했다”며 “결재 라인이나 결정권자가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CEO를 포함한 전 직원이 제안을 평가한다는 점은 우리만의 차별성”이라고 말했다.

지원도 확실하다. 이익이 발생하면 제안자와 수익을 배분하는데, 이익 발생 시점부터 20년간 수익의 일정 부분을 매년 받을 수 있다. 직원이 퇴사를 해도 수익금 분배는 계속한다. 회사가 가진 인프라와 네임 밸류 등을 공유하며 사업 발전의 기회를 넓혀 갈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박민서: “사내벤처는 손해 볼게 하나도 없는 제도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고 의사결정 권한까지 주니까요. 개발 장비부터 시작해 재정적인 부분까지 충분히 지원받고 있어요. 그래서 책임감이 커요. 무모해 보이는 도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끝까지 노력할 겁니다. ‘쟤들 열심히 했는데 망했네’라는 소리 들으면 안 되잖아요. 앞으로 도전하실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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