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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20년] 벽돌인가 휴대폰인가

2008.07.04 FacebookTwitterNaver

  바텐로이(SK Telecom 블로그 에디터)

자동차 한 대에 버금가는, 부의 상징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된 1988년, 휴대전화 가격은 무려 400만원이나 할 정도로 고가품 중 고가품이었습니다. 당시 현대 포니 엑셀 자동차가 500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한 대 값에 버금가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었지요. 요즘 소형 자동차 1대 값이 약 1천만 원 정도니까 현재 기준으로 약 800만원 정도의 체감 비용이 들었다는 셈이지요. 거기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65만원의 설치비가 별도로 들었습니다.

재미 삼아 자장면 가격과도 한 번 비교를 해볼까요? 1988년에 자장면 가격은 700원. 지금은 약 4천원으로 약 5.7배 정도 올랐습니다. 이 인상폭을 그대로 휴대전화에 적용하면 88년의 4백만 원은 지금의 약 2천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인 셈이지요. 이렇게 비싼 가격 때문에 휴대전화는 자연스레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얼굴 반쪽을 가릴 만큼 컸던, 벽돌 전화기

자동차 한 대 값에 버금갈 정도로 비싼 가격인데도 당시 휴대전화는 얼굴 반 쪽을 다 가릴 만큼 커다란 물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무렵 선보인 모토롤라의 다이나택 폰은 거의 1kg 가까운 무게로 사실 들고 다닌다는 의미의 휴대전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지요. 그러나 비싼 가격 때문에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휴대전화 가입자들은 벽돌처럼 큰 휴대전화를 당당하게 들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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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도입된 벽돌보다 큰 휴대전화


이 시기에 출시된 영화 속에서 이런 휴대전화들이 꽤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 액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큰 휴대전화를 들고 열심히 달리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죠. 영화에서도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니 실 생활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겁니다. 홍콩 액션 영화에 나온 주인공들이 대다수가 ‘조폭’이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까요? 우스개 소리를 조금 하면 우리나라 ‘뒷골목’에서도 상당 수가 휴대전화를 권력과 멋의 상징처럼 들고 다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휴대전화의 즐겁고도 다양한 용도

이렇게 덩치가 크다 보니, 휴대전화에 ‘벽돌’이라는 애칭은 아주 가볍게 붙었고 심지어는 망치, 혹은 흉기(!) 같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휴대전화로 호두를 깠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나오는가 싶더니,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을 소재로 한 유머들이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예컨대, 들고 다니면서 아령 대신 썼더니 팔이 튼튼해졌다, 집에서 못을 박는데 썼다, 심지어는 부부 싸움에 썼다(!) 등등이며, 간혹 술 취한 사람이 휴대전화로 상대방을 때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교육 부문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교육부는 91년 전기대 입시가 끝난 직후, 매년 고사 시작 10분 후에 문제를 공개하던 관행을 깨고, 매 교시 시험이 완전히 끝난 후에 시험 문제를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휴대전화와 무선호출기가 보급되어 부정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의 장점과 달리 당시 휴대전화의 통화 품질은 그리 훌륭하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서도 통화가 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음영 지역이 많았던 거지요. 게다가 초창기에는 수도권과 부산에서만 휴대전화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통화가 잘 되지 않는 지역이 많다고 하더라도, 휴대전화 가입자들은 절대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는 법이 없었답니다.

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휴대전화 서비스가 전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35개 도시와 경부, 호남, 중부, 구마 등 4개 고속도로에서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서비스는 계속 확장되어 1993년에는 전국 74개 시 전부와 107개 읍 그리고 주요 고속도로 주변에서도 통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휴대전화, 교육을 따로 받았다?!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휴대전화를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단 휴대전화를 신청하고 받기까지 약 2박 3일 정도가 걸렸고, 적체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이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휴대전화를 구입한 사람들은 교육도 받아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휴대전화의 특성상 특별한 곳에 쓰일 위험이 있다 보니, 보안에 대한 교육이 있었던 것이지요. 예전에 해외 여행 가는 사람들이 ‘소양교육’이라는 걸 받기도 했는데, 그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이었습니다. 예컨대, 국가에 해가 되는 용도로 쓰지 말아라, 이런 류의 얘기들이 오갔다고 합니다.

거리에 상관없이 전국이 같은 요금으로

1990년 6월 1일. 한국이동통신은 우리나라 통신 분야 최초로 전국 단일 요금제를 실시하면서 이동통신 대중화를 위한 요금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유선시외 전화와 같이 거리에 따라 요금이 할증되는 구조여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컸습니다.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통화 요금을 많이 내야 했기 때문이죠. 유선 통신 개념으로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요금이 비싸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움직이면서 사용하는 휴대전화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전국 단일 요금제가 실시되면서 통화 요금은 거리에 상관 없이 10초에 25원(지금은10초에 20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선전화는 거리 별로 차등 요금을 받고 있었죠. 따라서 50km 넘게 떨어진 장거리 통화에서는 비싼 휴대전화가 유선전화보다 훨씬 저렴해지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는 장거리 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들은 유선전화 대신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통신 요금을 절약하기도 했습니다. 유선전화 요금이 조정되면서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단일 요금제는 통신 요금의 체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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