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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역사] 한국의 무선통신, 날갯짓을 시작하다

2009.03.05 FacebookTwitterNaver

얼큰진지남 (SK텔레콤 블로그 에디터)

지난 번 글에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한국의 무선통신은 70여년간의 동면기를 지냈습니다. 그러던 무선통신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성장하여 근대화된 구조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한국의 통신 인프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형편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미국에서 셀룰러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미 개시했던 1980년에 우리나라는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선통신 서비스가 아예 없었을 정도였지요.

선진국을 잡아라!
하지만 사회적으로 무선 통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1981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무선호출 서비스를 일반인 상대로 개시.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설립된 1982년 셀룰러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 3월에 모토롤라, AT&T, NEC, 에릭슨 등 외국 이동전화시스템 개발회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동전화 시스템 됩을 위한 세미나 개최. 10월에는 [이동전화 현대화 계획]발표와 함께 세계에서 4번째로 AMPS(Advanced Mobile Phone Service) 도입 결정. 1983년에 시설공사에 착수, 38억여원을 투자해서 교환시설은 3,000가입자 용량으로 기지국은 수도권 10개 건설. 1980년대 초, 다른 나라에서는 수 십 년에 거쳐서 진행됐던 ‘통신의 진화’가 한국에서는 뛰어든 지 단 4년 만에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정보통신 산업은 빨리 진화, 발전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출범
이렇듯 무선통신 사업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자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4년에 [차량전화 및 무선호출 전담회사 설립 계획안]을 수립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29일에는 무선통신을 전담하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출범시킵니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직원 32명이 광장전신전화국 2층에 40평짜리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업무를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은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영업 개시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시작된 이동통신 서비스는 다름이 아닌 “차량전화”였습니다. 최근 출시된 T-옴니아는 90만 원대. 그렇다면 80년대 중반에 차량전화에 가입하고 사용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우선 가입하기 위해서 드는 돈만 설비비 88만 5천 원, 채권 20만 원등 총 116만 8천 원. 여기에 전화기 자체 값이 평균 300만 원이 들었으니 가입하기 위해서 쓰는 비용만 416만 8천원에 사용료는 기본료가 월 2만 7천 원, 통화료는 8초당 20원, 단말기 유지보수료 매월 1만 원까지. 당시 포니 2 자동차가 400만 원, 자장면이 700원이었다고 하니 차량전화는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차량전화는 날개듯이 팔려나가서 1985년으로 목표했던 회선 증설을 앞당겨서 시행해야만 했답니다.


80년대 중반에 1년간 차량전화에 소요되는 비용(한 달에 한 시간 통화 가정)


IT코리아의 기반을 다지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현장 사무실은 차고를 개조해 천막으로 빗물을 가린 임시 건물. 비바람이 치거나 뙤약볕이 내려 쪼이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했던 이곳에서도 직원들의 각오는 남달랐습니다. 적은 인력으로 몰려드는 신청자를 소화하려면 8시 출근 11시 퇴근이 기본이었던 시절. 일요일도 없이 출근해 ‘구의동 천막’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묵묵히 맡은 일을 감당해 냈던 직원들이 지금의 IT강국 코리아의 기반을 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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