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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기타

[생활 속의 모바일] 런던과 서울의 공간이동

2009.04.24 FacebookTwitterNaver


 최광예(KBS ‘세상은 넓다’ 방송작가) 

살면서 “그때 그 일은 참 속 시원하게 잘했다”라고 여기는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무작정 저질러본 일에 대한, 의외로 높은 만족감과 성취감이다.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행동보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일수록 이상하게도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런 일일수록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는다. 결과를 따지지 않고 원하는 것을 무작정 행동에 옮김으로써 얻는 만족감 때문일까?

런던 지하철, 튜브 에스컬레이터


방송작가 생활 7년차, 쉬지 않고 달려온 나를 위해 무언가를 저질러 보고 싶다는 충동이 꿈틀댔다. 세상은 넓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결심이 서자 일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었다. 목적지는 유럽. 인터넷과 여행책자,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유럽의 품에 안길 야심찬 계획을 진행했다. 뭔가 저질러보자는 일념 하나로 시작했지만, 갑작스레 결심한 여행이라 한 달 반 동안의 일정과 루트를 계획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비행기 티켓 가격을 알아보는 일부터 경유지를 선택하고, 여행 예산을 짜는 일까지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일주일 이상 집을 떠나본 적 없는 사람에게 혼자만의 유럽여행은 그만큼 의미심장한 프로젝트였다.

런던의 명물 2층 버스


열흘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인천공항 출국대에 섰다. 유럽여행의 첫 번째 도시는 영국 런던!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항공 티켓을 구입하려고 도쿄를 경유하는 장장 14시간의 비행을 감수했다. 비행시간이 길었지만, 설렘 반 두려움 반에 잠시도 편하게 눈을 붙이기 어려웠다. 덜컥 비행기를 탔지만, 제대로 된 여행일정도 확실한 계획도 없어 내심 불안했다. 일단 런던에 도착하면 그 다음은 알아서 흘러가겠지 하는 무모한 확신에 기댈 뿐이었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네 번의 화장실을 오간 끝에 드디어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은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내국인들은 쏙쏙 빠져 나가고, 외국인의 입국심사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섰다. 기다리는 내내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읽었던 웃지 못 할 입국 심사 에피소드들이 떠오르면서 입국을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유창한 영어실력도, 유명한 현지 호텔에 숙박을 하는 것도 아니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불법일지도 모를 현지 한국인 민박! 여행에 대한 설렘은 이미 바짝 말라버린 상태였다.

런던 국립박물관 앞 트라팔가 광장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얼굴로 입국심사대 직원과 눈을 맞췄다. 다행히 히드로 공항 인터넷 괴담들은 내게 현실이 되지 않았고, 무사히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이제부터 나의 유럽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공항터미널을 나서면서 문득 ‘지금이 몇 시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차적응이 아니라, 시차 계산이 안 되는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자동시간 설정 기능 때문에 신기하게도 휴대폰은 정확히 현지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현지 시간 오후 4시 45분. 자동로밍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 작은 발견으로 이후 유럽의 도시들을 옮겨 다닐 때마다 휴대폰을 껐다가 켜기만 하면 자동으로 현지 시간 설정을 할 수 있었다.

런던 버스 내부


이제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에 연락을 하고 찾아가기만 하면 런던 입성 완료! 신속하게 전화번호 검색을 끝내고 민박집으로 연락을 했다. 친근한 한국인 아주머니의 목소리. 간단한 안내를 듣고 민박집으로 가는 튜브 노선에 올라탔다. 런던의 지하철, 튜브를 타고 있지만, 내 손에는 서울에서 쓰던 휴대폰이 쥐어져 있다. 게다가 서울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마음껏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온통 낯설고 생경한 유럽의 도시 한복판에서 휴대폰이 나와 서울을 말없이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외로운 ‘나 홀로 여행’에서 이 작은 휴대폰 하나가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일이다.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면 꼭 로밍 서비스를 신청하자.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꼭 한국에 있는 것처럼.

[나 홀로 여행객의 비밀노트] 자동로밍 설정하기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휴대폰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건 출국 전 공항에서 로밍 서비스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공항에서 아예 로밍폰을 임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동로밍을 이용하려면 영상통화가 가능한 WCDMA 방식이어야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 풍경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공항과 기차역에서 한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한손에는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들고 난생 처음 써보는 공중전화 부스에 서서 그야말로 전화 한통 걸려다가 반쯤 진을 빼야 했다. 게다가 국제전화가 되는 공중전화가 많지 않아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거 해외여행 책을 사면 으레 국제전화를 거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별 접속번호+카드번호+비밀번호+지역+전화번호까지 긴 번호들을 누르다보면 아무리 집중해도 오류가 나기 일쑤다. 

해외 로밍 서비스가 시작된 초기만 해도 나라별로 다른 휴대전화 방식을 썼기 때문에 로밍 서비스가 되는 나라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2007년에는 심지어 도쿄나 싱가폴에서조차 로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3G 영상통화 서비스 이후, WCDMA와 GSM 망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나라, 특히 유럽의 도시들에서 로밍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로밍 서비스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가장 유용한 것은 문자 서비스. 공항을 떠나는 시점부터 실시간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덕에 혼자 있어도 절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로밍 통화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단돈 300원(2008년 5월 당시는 500원)이면 가능한 문자 메시지 서비스로 간단한 용건과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점은 정말 최고다. 한 달여의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그 어떤 비싼 여행자보험보다 든든했던 것이 바로 휴대폰이었다. 


KBS 방송작가 최광예님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 <문화지대>, <세상은 넓다> 등 주로 문화, 여행,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톡톡 튀고 감성적인 문체가 이색적인 그녀의 스토리텔링 참여도서는 <Shout! 자신감>, <앨리스의 비밀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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