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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역사] CDMA 개발 뒷 이야기_3, 불가능이란 없다

2009.04.27 FacebookTwitterNaver

얼큰진지남(SK텔레콤 블로그 에디터)

이렇듯 이동통신 기술 개발 사업 관리단(CDMA방식 및 PCS의 기술 개발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회사 부설기관으로 만들어진 기관)과 협력업체들은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이전 내용을 확인하시고 싶은 분들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싸늘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기자단과의 약속

그 대표적인 예는 언론사들. 당시 언론은 앞다투며 CDMA 상용화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성능이 입증된 TDMA를 들여와서 서비스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IT관련 인프라가 많이 부족했던 한국의 상황을 봤을 때 우리 힘으로 CDMA기술 개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이 퍼져 있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서정욱 단장은 즉각 관련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CDMA 개발이 왜 국책사업이 되었는지부터 이것이 성공해야만 우리가 기술자립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통신선진 대열에 낄 수 있다는 얘기를 충정어린 마음으로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서정욱 단장:
“딱 1년만 잠잠해 달라고 했지요 1년이면 CDMA 개발의 전모가 확실히 드러나니까 잡음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모두들 수긍이 갔는지 진짜 한동안은 일체 기사화 하지 않았습니다”

 
    산고의 고통  

간담회가 열리고 일년 후. 서정욱 단장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CDMA시험 통화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상용화 일정이 다가올수록 상용화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까지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던 1995년 12월 20일, 퀄컴에서 엔지니어들이 단말기를 가져와 인천, 부천, 지역을 돌며 시험을 하던 중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통화가 디지털 단말기에서 아날로그로 단말기로 넘어가면 착신이 안 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지요. 처음에 단원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려니…’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지나 바램에는 아랑곳없이 수 만 번의 콜 시험에도 불구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이 현상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혹시 단말기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관리단 구성원들은 모두 바짝 긴장했습니다. 단말기는 이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서비스 반경이 아직 좁아서 순수하게 디지털로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아날로그 착신이 안되는 단말기를 풀 수는 없는 법.. 관리단은 일단 단말기 공급을 중단시켰습니다. 개통 목표를 불과 몇 일 앞둔 상황.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해 할 여유도 없이 연구원들은 곧 가능한 모든 경우를 하나하나 적용시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12월 24일. 밤샘 작업 끝에 문제점을 찾아내긴 했지만 개통을 몇 일 앞둔 시점에 시스템을 뜯어 고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단말기의 소트트웨어를 변경하는 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결론이 내려졌지요. 하지만 미국 측 협력업체 엔지니어들은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휴가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상용서비스를 불과 일주일 앞뒀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지요.

이때 서정욱 단장이 나서서 협력업체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며 반드시 상용화를 시일 내에 한다는 것이 서 단장의 주장이었지요. 그러자 미국 본사에서도 휴가 떠난 직원들을 호출을 하는 등 일대 소란을 빚으며 단말기의 소프트웨어를 수정했고 한국에 나와있던 3명 중 한 명은 자진해서 한국에 남았습니다. 소프트웨어 보완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런 힘들이 모아져서 드디어 96년 1월 1일에 SK텔레콤은 인천, 부천지역에도 무사히 CDMA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CDMA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치며

CDMA 상용화는 IT 약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전세계에 IT강국으로써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No’할 때 ‘Yes’를 외치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과 자기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떤 기술이 개발되어 저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까요? CDMA상용화를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세상이 곧 현실에서 구현되지는 않을까요? 우리 눈 앞에 펼쳐질 미래가 기대가 됩니다. /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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