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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모바일] 나의 표정을 닮은 또 하나의 생물체

2009.05.15 FacebookTwitterNaver

대중문화비평가 정여울

이따금 휴대폰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전화번호부를 가나다순으로 쭉 훑어보기도 하며 타인이 내게 보낸 메시지와 내가 타인에게 보낸 메시지를 가만히 곱씹어 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순간순간 메시지를 보낼 때는 몰랐던,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일부가 드러날 때가 있다. 내가 이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네? 내가 번호를 입력한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내가 남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에 왜 이렇게 ‘미안하다’는 표현이 많을까? 뭘 그리 미안한 일을 만들고 살았을까?

어, ‘보고 싶다’는 말도 엄청 많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걸까? 어머, 이때는 이런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네. 1년 전만해도 이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줄 알았구나. 휴대폰 메모리 파일에 저장된 나의 기록을 곱씹을 때면, ‘이 녀석이 나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소스라친다. 모바일에 너무 많은 정보를 저장해 놓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기억을 모바일 메모리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치에 길치에 몸치인 내게 최초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은 혼란스럽고 낯선 소통방법이었다. 나는 이 기계와 영원히 친밀해지지 못할 거라 믿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휴대폰 알람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아침마다 휴대폰 스케줄러로 일정을 확인한다. 모바일 문자메시지로 전해지는 위로의 메시지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을 느끼기도 하며, 달콤하다 못해 느끼한 메시지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거침없이 날리며 키득대기까지 한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좋아하는 사람 앞일 수록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나를 때로는 수다스럽고 가끔은 다정하기까지 한 사람으로 만든 것도 문자메시지의 힘이 아닐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표현 자체를 금기시하던 내가 이제는 각종 하트♡, ♥, ♡.♥ 이모티콘을 거침없이 날리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모바일은 곧 나의 표정을 닮은 또 하나의 생물체처럼 느껴진다. 모바일 벨소리는 때로는 기다리던 즐거운 소식이 마침내 도착했을 때 미소 짓는 아이의 ‘까르르’ 웃음소리를 닮았고 때로는 일에 바빠 점심도 못 먹은 우리 뱃속에서 흘러나오는 ‘꼬르륵~’소리를 닮았다. 상처 받은 우리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지는 ‘와르르’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기어이 들었을 때의 ‘허걱!’하는 비명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때로는 휴대폰 벨소리가 ‘오늘은 왜 이리 하루 종일 머피의 법칙만이 통할까’ 싶은 날 터져 나오는 ‘에구구’ 한숨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모바일의 소리는 우리 몸과 마음의 또 다른 투영인 것이다. 얼리 어댑터는커녕 ‘Lazy Adaptor’인 내가, 최첨단 유행이 가장 늦게 도착하여 ‘내가 알면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라고 투덜대는 나에게도, 모바일은 일상의 곳곳을 침투하여 모바일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물과 공기처럼 긴요한 존재가 되었다.


《모바일 오디세이》의  ‘Letter’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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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비평가 정여울 님은..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모바일 오디세이》,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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