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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모바일]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해진 사랑의 메시지들

2009.05.28 FacebookTwitterNaver


  박민영 (문화평론가)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지하철 출근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지하철이 운행 도중 갑자기 멈춰서더니, 전기마저 끊긴다. 깜깜해진 전철 안. 잠시 정적이 흐르고,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여기저기서 파란 불빛들이 켜진다. 사람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애인이나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지하철 안은 금세 통화 소리로 가득 찬다. 그러나 노총각 김봉수(설경구 분)에겐 통화할만한 사람이 없다. 이때 그가 조용히 읊조리는 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장면은 김봉수의 외로움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휴대폰에 대한 현대인의 감성적 의존을 보여주기도 한다. 승객들이 너도 나도 통화를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약속이 있었던 사람은 지하철 연착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음을 상대방에게 알릴 것이고, 영업하는 사람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전화로 고객 상담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저 친구나 애인과 잡담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근본적으로 심리적으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만들어내는 불안감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친한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냄으로써 낯선 공간이 주는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휴대폰이 만들어내는 공간 감각과 연관이 있다. 친숙한 사람과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휴대폰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의 상상적인 교류의 장소를 만들어낸다. 휴대폰 MP3를 통해 친근한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 익명의 낯선 장소는 친근한 사적 공간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두 개의 공간에 동시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물리적으로 속해 있는 공간과 대화가 이뤄지는 가상공간. 휴대폰 사용자는 그렇게 친밀한 사적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불안한 상황에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그려졌던 깜깜한 지하철이 만들어내는 불안감, 그리고 휴대폰이 주었던 위안감은 영화가 상영된 지 2년 후,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극적으로 재현되었다. 35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고에서 희생자들 중 상당수는 전기가 나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독가스에 질식되는 극한 상황에서 휴대폰에 의지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자 했다. 당시 일화 중 몇 개만 소개하면 이렇다.


박정순씨(34)는 화염이 치솟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시어머니 황점자씨(63)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무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박씨는 3남매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지고 말았다. 한국기독학생회(IVF) 간사 허현씨(29)도 동료 간사 강지현씨(20)에게 전화를 걸어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학습지 교사인 주부 김인옥(30)씨는 6살과 4살짜리 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남편 이홍원(35)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 밥 맛있게 준비해놓을 테니까 오늘 빨리 퇴근해.” 그 때만 해도 남편 이씨는 행복한 저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부인 김씨로부터 피맺힌 절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울먹이며 남긴 마지막 말은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였다. 

작년에 있었던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서도 휴대폰은 마지막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 중 압권은 전중국인을 울린 한 문장의 문자였다. 당시 의료요원들은 폐허 더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사망한 20대 여성을 발견했다. 그 밑에는 놀랍게도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있었다. 그녀가 쏟아지는 잿더미를 온몸으로 막아낸 탓에 아기는 무사했다. 그리고 포대기에서 발견된 휴대폰에는 이런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사랑하는 아기야, 만약 네가 살 수 있다면, 엄마가 널 사랑했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해.” 그녀는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휴대폰 문자로 아기에게 엄마의 사랑을 전했던 것이다.

인간은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은 관념적인 차원의 말이 아니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에게 희망은 생명의 구조와 정신 역학의 본질적 요소이다.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은 육체가 살아있어도 자신이 죽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반면 희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살다가 언제 어떻게 예기치 않은 재앙을 맞을지 모른다. 만약 그럴 때,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생존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통화가 여의치 않은 경우, 휴대폰 바탕화면에 깔린 가족이나 애인 사진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다. / SKT

문화평론가 박민영 님은…
저서로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2006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즐거움의 가치사전](2007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도서),  [이즘](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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