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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기타

[생활 속의 모바일] 디지로그

2009.07.02 FacebookTwitterNaver


 MBC 아나운서 강재형 

내게 첫 디지털은 CD였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출판사 사장이 된 선배 집에서 본 CD는 말 그대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원반에 지문이라도 찍히면 녹아버릴 거 같았다. 손가락에 힘이라도 줘서 잡으면 바스러질 거 같았다. ‘전축’에 잘못 넣으면 기계가 고장 날 거 같기도 했다. 그런데 웬 걸, 소릿골도 없는데, 지직거림 없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더라는 것. 레이저 빔이 읽을 수 있는 소리를 새겼다는 CD. 그렇게 디지털은 내게 새로운 지평으로 다가왔다. 소리를 뽑아내던 플레이어와 스피커도 그랬다. 본체에서 분리 가능했던 스피커의 생김도 정사각형이어서 – 요즘 표현으로 하면 ‘큐브(빅) 스타일’쯤 되겠다 – 디지털의 느낌이 더 강했는지 모른다. 근데, 그 것 뿐이었다. 회수권 몇 장 달랑 들고 다니는 학생에겐 그림의 떡이었으니까. 그만큼 비쌌다. CDP는 물론이고, LP보다 3배는 족히 되는 CD값 또한 그랬다.

기술 발달은 기능은 높이고 값은 떨어뜨리는 법. 어찌어찌해 모은 돈으로 CDP를 드디어 손에 넣었다. 선경화학에서 이름을 바꾼 SKC가 ‘CD 대중화’를 내세워 발매한 ‘중저가 레이블’의 시판도 CDP 장만의 한 구실이 되었다. 그렇게 CD와 더불어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눈에 띈게 DAT(Digital Audio Tape). 릴 녹음기로 녹음해서 가위질로 편집하던 때 DAT는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녹음 방송과 생방송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원음’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지금은 천덕꾸러기에 무용지물이 된 DAT의 뒤를 이은 게 MD(Mini Disk). 지금은 초등학생인 둘째, 딸의 옹알이는 MD에 담겨있다. 첫 아이, 아들의 옹알이는? 그렇다. 카세트테이프에 기록되어 있다. 불과 5년 차이인 형제지간에도 디지털 세상에선 ‘세대차’가 났다. CD, DAT, MD    MP3시대에는 이미 ‘고철 취급’받을만한 얘기다.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꾼‘ 디지털 기술이 녹음과 재생의 플랫폼만 바꾸었다면, 그 건 진짜 디지털 혁명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입력과 저장, 출력 보다는 직접전달, 곧 ’Live’로 이루어지니 그렇다. ‘쪽지창’ 띄워놓고 수다 떨고, 회의 하는 것도 디지털이 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비 내리는 화면’이나 ‘고스트 현상’ 탓에 모호하게 맺혔던 텔레비전 방송도 디지털 세상은 손에 잡힐 듯 화면을 선명하게 전해준다. 아, 그리고 디지털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있다. 바로, 휴대전화이다.


나는 아날로그 전화 시대를 기억한다. 아니, 추억에 가깝다는 게 어울리겠다.
모토로라 9830’을 아시는지. ‘벽돌’이란 애칭(?)에 어울리게 크고 무거운, 그래서 ‘호신용’으로도 손색이 없던 전화기이다. 그 옛날 액션스타 ‘청룽(成龍)’이 영화 속에서 들고 다니던 바로 그 전화기. 방송 중계차 기술요원들이 완장처럼 여기며 들고 다녔던 바로 그 전화기. 잘 나가는 연예인 매니저의 손가방을 묵직하게 했던, 가방 밖으로 삐져나온 안테나를 첨단의 상징으로 여기게 한 바로 그 전화기이다. 그 전화가 내 첫 전화기였다. ‘9830’이란 모델 숫자만큼이나 ‘이동통신 사용자’가 되려면 (가입비, 보증금 따위를 포함해) ‘983,000원’ 가까운 거금을 들여야 ‘벽돌’을 장만할 수 있었던 때, 그때를 추억하려한다. 

9830의 소리는 자연에 가까웠다. 특정 지역에 가면 그림자 생기듯 ‘전파 음영지역’이 있었다. 거기 들어서면 (어김없이) 또렷하던 소리가 가물거리며, 우물쭈물하다 끊기고는 했다. 분명히 남자와 통화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영롱한 (목소리의) 젊은 처자로 대화 상대가 바뀌는 것 또한 가능했던(‘폰팅’이 아니다 ‘혼신(混信)’탓이다), 그래서 저잣거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도 인간적이었다. 그렇듯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아날로그 통신은 전화기 덮개를 튕기듯 여는 ‘플립형’과 서류철 여닫듯이 접는 ‘폴더형’, 미닫이 같은 ‘슬라이드형’ 까지 이어졌다. 묵직함에서 앙증맞음으로, 두꺼움에서 얇음으로 진화한 아날로그 전화기는 컬러시대에 밀려난 흑백텔레비전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날로그 전화를 밀어낸 건, 부호분할다중접속(符號-Code 分割-Division 多重Multiful 接續-Access) CDMA의 등장, 1996년의 일이다. 그 게 이제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휴대폰이 무선호출기 ‘삐삐’를 간단히 품어내더니 동영상과 인터넷까지 아우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디지털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녹음하고,  편집해서,  들려주며, 간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은 디지털 세상? 아니, 그렇지 않다. 세상은 여전히, 앞으로도 아날로그이니까. 디지털은 우리가 듣고 보고 느끼는 온갖 정보를 숫자와 부호(符號) 만들어(encoding) 전달하고 보관하는 수단이고 기술이기에 그렇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라는 얘기다. 디지털만 달랑 남아있는 세상에 떨어진 우리는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가 될 터이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얘기? 디지털(기술) 세상일 수록 아날로그의 콘텐츠와 벗하며 지내자는 얘기다. 끄트머리에 있는 아날로그 파형(波形)도 그의 하나이다.  

MBC 아나운서 강재형님은…
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을 지냈으며,  <우리말나들이>를 기획 및 연출하였다. 지독히도 국어 사랑이 남다른 그의 또 다른 이력에는 국어심의회 위원을 지냈다는 것이다. 현재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의 위원이다. 삼라만상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려 오늘도 애쓰고 있다는 그는 <생활 속의 모바일>을 통해 그의 말글 사랑에 모바일을 접목한 글을 연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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