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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모바일] 응답할 수 있음과 응답해야 함, 그 사이

2009.07.14 FacebookTwitterNaver



 박민영 (문화평론가)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리라.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오늘날의 연인들에게  이 기적과 같은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대폰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휴대폰 통화와 문자를 통해 사랑의  싹을 틔우고 키워나간다. 사랑은 휴대폰을  통해 형성되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어느 날 어떤  일로 다툰 후, 상대방이 갑자기 전화를  받지도 않고, 문자에도 답이 없다면? 휴대폰이 ‘소통의 메신저’에서 ‘단절의 메신저’로 돌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응답은 그 자체로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배타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휴대폰을 통해  연인, 가족, 친구, 동료, 고객 등 원하는  사람과 언제든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편리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장점은, 엄밀하게 말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가깝다. 왜냐하면 수신자는 어떤 급한 용무에 쫓겨 응답하지 못할 처지에 있거나, 누군가와 아무렇지 않게 통화하기 힘들 만큼 울적한 기분에 빠져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로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발신자는 어떤 이유로 수신자가 응답하지 않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설사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해도 실망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은 상대가 전화선 끝에 있는 것을 전제하므로, 답변이 없는 경우 대개는 실망한다. 나아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나’ 혹은 ‘나를 싫어하나’하고 생각해 심리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휴대폰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릴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중요해진 것이 휴대폰 예절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휴대폰을  통한 상호작용은 부적절한 상황 속에서  갑작스럽게 차단될 수 있다. 그럴 때  수신자는 “죄송합니다. 지금 회의 중이라……. 제가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지금 운전 중이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하고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 특히 상대가 손윗사람이거나 직장 상사, 혹은 고객이라면 이런 응대는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기다리는 것과 기다리게 하는 것은  권력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휴대폰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윗사람의 전화에는 곧 바로 응대하는 것이 예의가 된다. 일반적으로 아랫사람은 더 오래 기다리게  해도 되지만, 윗사람에게는 그래선 안 된다. 불가피하게 윗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했을 경우 그 연유를 통화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설명해야 한다. 권력 관계는 전화 받는 타이밍에도 적용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대개 벨소리가 여러 번 울린 다음에야 받지만, 신분이 낮은 사람은 벨소리가 한두 번 울리면 곧바로 받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휴대폰이 만들어내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스킬이 되었다.


톰 스탠디지(Tom Standage)는 『사슬풀린 인터넷』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화는 전신과 마찬가지로 전선을 사용했기 때문에, 원래 말하는 전신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그 같은 논리는 휴대폰과 유선전화에도 해당된다. 언뜻 보기에 휴대폰은 ‘들고 다니는 집전화’ 쯤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선전화는 ‘특정 장소’로 전화를 거는 것이지만, 휴대폰은 ‘특정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유전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 지금 집에 없습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해서 심리적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휴대폰으로는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늦게 받거나, 문자 답변이 없으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휴대폰이 유선전화보다 훨씬 섬세한 응대를 요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 우리는 묵주알을 굴리듯 휴대폰 액정을 쳐다본다.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휴대폰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이후, 우리는 이동 중에도, 일하는 중에도  전화를 걸거나 받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 욕구는 오지도 않은 진동이나 벨소리를 감지하는 환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휴대폰이 우리의 감각과 정서를 재구조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비단 휴대폰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항상 감각의 변화를 유도한다. 우리는 휴대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라도 응답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달리 말하면 ‘언제 어디서라도 응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응답할 수 있음’과 ‘응답해야 함’, 그 사이에 우리는 서 있다./ SKT

문화평론가 박민영 님은…
저서로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2006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즐거움의 가치사전](2007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도서),  [이즘](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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