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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모바일] 모바일 오디세이를 꿈꾸며

2009.08.20 FacebookTwitterNaver

대중문화비평가 정여울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은 소설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김형경의 소설《꽃피는 고래》(창비, 2008)에서 열일곱 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은 니은이는 좌절과 우울의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우연히 공연장에서‘한 달 동안 희망과 기쁨이 되는 문자메시지를 받는 쿠폰’을 1만 8천 원에 구입하게 된다. 반신반의하며 구입한 문자메시지 쿠폰을 통해 니은이는 매일매일 누군가의 일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아가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던 지독한 고립감이 다만 몇 통의 문자메시지만으로도 이 세상 누군가와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는 희열로 인해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을 갖는다.

“흐린 날. 오후에는 바람도 분대요. 따뜻한 국물 마시고 든든하게 하루 시작하세요.”영호언니의 문자메시지는 생각보다 힘이 셌다. 오늘 나는 늘 먹던 된장찌개나 매운탕 국물을 특별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오늘부터 마임 배우러 갑니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일은 늘 설레네요. 두근두근.”그런 문자를 받던 날 나는 오랜만에 교과서를 펼쳤다.
-김형경, 《꽃피는 고래》중에서-
니은이는 이런 따뜻한 문자메시지의 힘으로 조금씩 상처 입은 자아를 치유해나간다. 작가 김형경은 독자들을 위한 이벤트로 일주일 동안 직접 독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독자들이 작가에게 직접 받는 문자메시지의 설렘은 소설이 주는 감동과 함께 드라마틱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혼자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휴대전화에‘나에게 쓰는 편지’를 입력하여 언제든 펼쳐볼 수도 있다. 휴대전화가 있는 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세계를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게 된다.

이제 휴대전화는 산업과 기술의 문제를 넘어 현대인의 삶을 담아내는 거대한 문화적 용광로가 되었다. 그 어떤 집단이나 제도나 담론에도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개인의 기억’을 기록하고 재현하는‘1인 미디어’로서의 모바일. 똑같은 휴대전화 모델이 수백만 대씩 팔려나간다 하더라도 그 모델을 가진 사람에 따라 그 휴대전화는 오직 이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미디어가 된다.

모든 휴대전화에는 저마다의 여행, 저마다의 삶의 무늬가 담겨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 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저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실험하는, 생명 없는 주체로서의 모바일. 모바일은 이미 또 하나의 사이보그의 일종으로서 진화하고 있다. 세상 모든 휴대전화가 단순한‘상품’을 넘어 저마다의‘사이버 주체’로서 겪어내는 시공간의 여행. 그것을 가리켜 나는‘모바일 오디세이’라 부르고 싶다.


모바일 오디세이》중에서


대중문화비평가 정여울 님은..
서울대독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모바일 오디세이》,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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