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닫기
H기타

[생활 속의 모바일] 니스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

2009.09.23 FacebookTwitterNaver

 최광예 (KBS ‘세상은 넓다’ 방송 작가)

여행할 곳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현지에서 느끼는 특별한 감상여행의 주된 묘미다. 하지만 목적지로 떠나는 과정이야말로 여행의 참된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보너스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열차여행은 유럽여행의 낭만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영국과 스페인까지는 주로 항공편을 이용했지만, 드디어 바르셀로나에서 유레일패스를 오픈했다.
유레일패스는 셀렉트 패스와 연속 패스 두 종류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여행일정에 맞춰 구입하는 것이 좋다. 내 경우는 연속 패스였기 때문에 일단 오픈일부터는 열차 이용횟수와 관계없이 내 마음대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니스역의 여행객들


열차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니스! 바르셀로나에서 니스까지는 7시간 남짓 걸린다. 국경을 이동하지만, 유레일을 이용할 때는 스페인과 프랑스 두 나라 사이를 넘나들 때 어떤 통과절차도 거치지 않는다. 한동안 차창으로 지나치는 이국적인 풍경에 정신이 팔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하품이 나왔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성미 급한 코리언 처자에게는 오래잖아 지루함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못내 슬프다. 역시 내게는 뭔가 다이내믹한 사건이 필요하다!

기차 안에서 7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고민하던 차에 몽펠리에에서 니스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고 나서 뭔가 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1등석 유레일을 타고 점잖은 스페인 어르신들과 몽펠리에까지 올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 다름 아닌 휴대폰 셀카 풍경이다. 몽펠리에에서 갈아탄 열차는 지정석이 아니라,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서 앉으면 됐다. 그런데 대각선 창 쪽에 앉아 있던 여자가 휴대폰을 꼼지락거리더니 셀카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서양 여자의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20대 후반은 돼 보이는 여자가 주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셀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셀카 자태는 내게만 주목을 끈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옆에 있던 프랑스 할머니와 아저씨도 은근하게 바라봐 주셨다. 그 순간 불쑥 내게 말을 건네는 그녀. 허걱! 그것도 불어로 말이다. 불어라고는 ‘봉주르’밖에 모르는데……. 다행히 그 순간에는 아프리카 말로 이야기를 했어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면서 상큼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 하나밖에 더 있겠는가.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셀카를 그리 열심히 찍으시더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동양인인 내게 이런 황당한 부탁을 하는 걸까? 잠자코 사진 한 장 찍어드리고 나니, 이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예상된 시나리오였지만, 내 얼굴에 반밖에 안 되는 그녀와 굴욕의 셀카를 찍고 나니, 차창 밖의 풍경이 어느새 니스의 푸른 바다로 바뀌어 있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니스에서 숙소는 백패커스라는 유스호스텔을 예약해 두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서 혹시 찾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컴퓨터 화면에서 약도 사진을 찍어 두었다. 역시나 분명 니스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할 곳이, 아무리 찾아봐도 ‘백패커스’라는 간판은 보이질 않았다.

백패커스 정도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디카에 찍어둔 약도를 보여주며 질문을 시작하니 다들 영어가 통하지 않아도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백패커스는 여행자들에게만 유명한 숙소였다! 일반인들은 백패커스라는 숙소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슬슬 해가 지려고 하는데, 예약한 숙소를 찾을 수가 없으니 점점 기운이 빠졌다. 너무 지쳐 일단 눈에 보이는 카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한참을 헤매던 그 골목 어귀의 노천카페, 아니 동네 식당에 더 가까워 보이는 곳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괴팍해 보이는 주인장 할머니가 내주는 정체불명의 요리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일어서려던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길을 물었다. 그 순간 할머니,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불어로 뭐라 뭐라~ 하신다. 뜻은 알 수 없지만, 느낌상 여기라는 것 같다. 아니, 이게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할머니의 카페가 있는 건물, 그러니까 이 건물의 3층이 백패커스호스텔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패커스의 위치는 여행자들을 농락하는 위치에 있다. 건물 어디에도 간판 따위는 없고, 입구에 있는 벨을 누르는 위치에 1cm×5cm 정도로 써둔 그야말로 코딱지만 한 이름이 전부였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약도만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아갈 위치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깨끗한 호스텔이라 맘에는 들었다. 게다가 니스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그런지, 4인실 방에 나 홀로 잠들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앗! 그런데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짐을 풀고 있는 게 아닌가. 1인실 사용의 꿈은 물 건너갔구나 생각하고 조용히 침대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태국여자, 아니 태국인으로 보이는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넨다. 

“한국분이시죠?” 
“네? 아~! 네…….”
이런! 한국분이시구나.
“외국사람인 줄 알았죠?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순간 긴장이 확~ 풀리면서 태국 페이스를 가진 언니와 신나는 수다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때가 마침 칸영화제 기간이라 그 언니는 종일 칸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보고 온 모양이었다. 안젤리나 졸리부터 브래드 피트까지 유명 배우들을 봤다며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니스에서 숙소를 찾아 헤매던 그 때, 한 시간 거리의 칸에서는 별들의 축제가 한창이었던 것이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영화배우를 보는 일에는 사실 큰 흥미가 없다. 그저 그녀의 흥미진진한 레드카펫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재미있었다.

유럽인의 스마트폰 사랑
다음날 일찌감치 서둘러 마티스 미술관으로 향했다. 마티스 미술관은 니스에서 약간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시미에 지구에 있는데, 이곳은 니스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한다. 마티스의 그림을 처음 본 건 중학교 때 쓰던 노트에서였다. 당시 상당히 감각적인 문구회사에서 마티스의 그림이 들어간 노트를 팔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트라 기억에 남는다. 내게는 노트로 시작된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의 그림을 마음껏 보리라 들떠 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화요일은 휴관일이란다.

마침 휴관일이었던 마티즈 미술관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는데 옆 공원에서 동네 유치원 아이들의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인형 같은 옷을 입고 나와서 재롱잔치를 하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니, 어느새 마티스 그림에 대한 아쉬움이 잦아들었다.

사미에 공원에서 만난 귀여운 어린이들


그래! 이도저도 안 될 바엔 차라리 바다나 보러가자!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기대하고 찾아간 니스의 앞바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온통 자갈밭이다. 게다가 백사장을 그리워 할 틈도 없이 어느새 먹구름이 깔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흐린날의 쓸쓸한 니스의 해변

니스 바다의 외로운 배 한 척

니스 해변가의 사람들


아~~~ 니스야, 너 나한테 왜이러니? 

니스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로마행 야간열차에 올라탔다. 4인실 침대칸의 문을 열자 잘생긴 프랑스 청년이 짐을 풀고 있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나도 짐을 풀고 자리에 승무원이 준 시트커버를 깔았다.

잠시 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이트로 매치한 대머리 아저씨가 들어왔다. 4인실 침대칸은 이층침대라서 둘은 아래서 둘은 위에서 자야 한다. 생면부지의 프랑스 남자 둘과 좁은 침대칸에서 함께 하룻밤을 견뎌내야 하다니……. 그나마 젊은 프랑스 청년이 훈남임을 감사해야할 판이었다. 야간열차 내에서 워낙 도난사고가 빈번하다고 들어서 되도록 야간열차를 타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프랑스 남자 셋과 로마까지 가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야간 열차를 타러 가는 니스역 개찰구


대머리 아저씨는 2층에 올라가 있는 게 영 불편한지 정신없이 오락가락하고, 훈남 청년과 나는 각자 노트북을 켜고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선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아쉽게도 열차 안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훈남 청년이 휴대전화로 열심히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 유명한 블랙베리폰이다.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블랙베리폰을 들고 있던 훈남 청년이 왜 그리 부러워 보이던지…….

사실 블랙베리오바마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폰이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돼서도 블랙베리폰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 지인들과 업무상의 이메일은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백악관 최초의 휴대전화 사용기록을 남기게 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만큼 스마트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우리나라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난 유럽 사람들 대부분은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열차를 이용하는 내내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사람들 속에서 스마트폰 유저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사실 내 휴대폰도 스마트폰이지만, 나부터도 결코 ‘스마트한’ 기능을 많이 사용하는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쓸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와보니 가장 절실한 게 무선 인터넷 기능이다. 이제 여행 중에도 데이터 로밍으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요금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데이터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에 울컥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구글 지도를 다운받아 볼 수 있는 기능도 생겼는데, 만약에 내가 구글 지도를 다운받아 여행을 했다면 니스에서 숙소 찾는 일이 아주 조금은 더 쉽지 않았을까?
 

KBS 방송작가 최광예님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 <문화지대>, <세상은 넓다> 등 주로 문화, 여행,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톡톡 튀고 감성적인 문체가 이색적인 그녀의 스토리텔링 참여도서는 <Shout! 자신감>, <앨리스의 비밀통장>이 있다.

FacebookTwitter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