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모바일] 나성에 가면 2

2009. 10. 14

MBC 아나운서 강재형
나성은 어디인가. 미국에 있는 땅으로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LA를 이르는 말이다. 로스앤젤레스를 한자로 음역해 쓴 게 라성(羅城)이고, 우리말의 두음법칙(頭音法則, ‘ㄹ’이나 ‘ㄴ’이 첫음절 첫소리가 되는 걸 꺼려서 나는 발음)으로 나성이 된 거다. 나라 이름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濠洲), 도이칠란트를 독일(獨逸), 이집트를 애급(埃及, 구약성경 ‘출애굽기’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베를린과 파리 같은 도시 이름을 백림(伯林), 파리(巴里)로 적는 것도 마찬가지. 나성(LA)과 가까운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상항(桑港)이라 하고 할리우드는 성림(聖林)이라 한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주(California 州)는 가주(加州)라 한다. 그룹 ‘Eagles’의 유명한 팝송 ‘Hotel California’를 ‘독수리들’이 부르는 ‘가주 여인숙(旅人宿)’으로 농삼아 번역한 팝칼럼니스트도 있었다.

내가 나성에 간 까닭은 중미 지역에 있는 멕시코, 쿠바를 가기 위해서였다. 쿠바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와도 미수교국이어서 다른 나라를 거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택한 경유지가 멕시코였다. 거기를 들락거리기 위해서 들른 곳이 나성, 로스앤젤레스이다. 최종목적지였던 쿠바 얘기부터 몇 마디 하자. 지난번 ‘나성에 가면 1’에 살짝 공개한 쿠바와 멕시코 후일담의 나머지 조각쯤 되겠다.

하바나에서 택시 영업하는 기사 아저씨. 쿠바인들의 환한 웃음은 어디든 나를 따라다녔다.


한때 쿠바에는 이런 농담이 있었단다.
어느날 동물원에 ‘동물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생겼다. 얼마 뒤에는 ‘동물의 음식을 먹지 마시오’였다가 최근에는 ‘동물을 잡아먹지 마시오’로 경고문구가 바뀌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그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이후 60년대와 70년대, 80년대 이후의 경제를 풍자한 이 농담은 ‘리빙 하바나(원제목 : For Love or Country)’라는 영화에 나온 대사이기도 하다. 그렇다. 쿠바는 (우리에 비해) 못 사는 나라가 맞다. 1인당 GDP가 우리나라의 1/4쯤 되는 4,500달러(2007년 기준, 외교통상부 자료)이다. 그래서 쿠바 인민의 삶은 피폐하다? 그건 잘 모르겠다. 현지에서 만난 쿠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으니 말이다. 기본적인 식량 따위의 생필품은 나라에서 배급해주니 ‘굶어 죽을 걱정’없어 그럴까? 글쎄, 어쩌면 바깥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럴지 모른다. 쿠바 인민에게 해외 여행은 물론 인터넷 사용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전화 사정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외국인이 전화카드를 구입하는 것도 어려웠다. 동전 사용하는 전화는 찾기 어려웠고, 여느 나라와 달리 길거리에서 휴대폰 통화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도 처음에는 낯선 풍경이었다.

쿠바 공중전화, 동전용 아닌 ‘카드전화기’가 많았다. 카드 구입은 어디서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국제 전화는 호텔에서 ‘거금’을 지불해야 가능했다.


멕시코는 빈부격차가 크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외국인이 적응하기에 어려움은 없는 곳이다. 한국에서 쓰던 전화기로 로밍 통화가 가능할 만큼 통신 사정은 ‘문제 없음’이다. 한 곳이다. 적어도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그렇다. 멕시코 휴양도시 칸쿤의 버스 안에서 음성통화는 물론 ‘문자질’로 분주한 젊은이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신줏단지 모시듯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어든 멕시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거리 풍경은 우리나라 길거리나 버스,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칸쿤 버스 안에서 만난 멕시코 사람들.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사람. 문자를 보내는 버스 승객

칸쿤 버스 안에서 만난 멕시코 사람들.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사람. 문자를 보내는 버스 승객


이제 ‘나성에 가면’ 얘기를 하자.
먼저,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한국에서 가져간 휴대폰을 켤 것. 3세대(3G) 전화기는 물론이고 2세대 휴대폰도 자동 로밍이 될 것이다. 속세와 인연을 끊을 게 아니라면 뒷일 생각하지 말고 로밍하는 게 좋다. 급한 일이 있을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현지인들과 약속이나 항공편, 숙소 확인에 요긴하다. 보험 드는 셈 치고 로밍하시라. 그렇다고, 무턱대고(?) 전화 걸거나 받지는 말자. 로밍 통화를 할 때는 ‘참을 인(忍)’을 적어도 세 번 떠올린 뒤에 전화할 것을 권한다. 요금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로밍 통화한 달 전화 사용 요금 내역


지난 달 내게 청구된 이번 여행기간의 전화요금 내역이다. 로밍 현지 발신통화료현지 수신, 국제 발신 등을 합해서 로밍서비스통화 요금만 약 24만원이 나왔다. 편리한 건 좋은데 비싼 게 흠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여행객에게는 ‘문자 교신’을 권한다. 한국 식구들과 별별 문자를 다 주고 받고도 내가 들인 돈은 음성통화료의 1/9정도인 2,850원에 불과했다. MMS수신은 현지 통신사에 따라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도 참고하실 것.

멕시코 대도시와 미국 모든 지역에서 로밍통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과달라하라 변두리와 미국 모하비 사막에 있는 데스밸리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기의 신호수신 안테나가 전혀 뜨지 않았다. 한 마디로 ‘전화불통’이었다는 얘기. 라디오 수신도 불가능한 곳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워낙 오지여서 그랬을 거다. 아니면 ‘군사보호지역’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모하비 사막에는 ‘외계인 연구소’와 ‘비밀군사기지’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데스밸리 캠핑장 인근에서 찍은 사진. 라디오방송은 물론 휴대폰도 불통인 곳임을 알 수 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고, 소식을 전해달라고 새샘트리오는 노래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일이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나성에 가면’ 전자메일을 보내고, 로밍을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 할 일이다. 이것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일이다. 다만, 나성에 가면 호두과자가 눈에 띄더라도 ‘고향생각’에  덥석 집어 들지 말기 바란다. 팥 앙금이며 반죽이 퍽퍽해서 그 맛이 우리 호두과자의 그것이 아닌 걸 내 입으로 확인했기에 하는 말이다. 호두도 들어있고, 생김도 호두인데 그 맛이 왜 안 나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다. ‘나성에 가면 먹지 마세요 / 뚜루루루 뚜루루루 / 호두과자를 먹지 마세요 / 뚜루루루 뚜루루루 / 그 맛이 한국 맛이 아니니까…’

MBC 아나운서 강재형님은…
한국아나운서연 합회장을 지냈으며,  <우리말나들이>를 기획 및 연출하였다. 지독히도 국어 사랑이 남다른 그의 또 다른 이력에는 국어심의회 위원을 지냈다는 것이다. 현재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의 위원이다. 삼라만상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려 오늘도 애쓰고 있다는 그는 <생활 속의 모바일>을 통해 그의 말글 사랑에 모바일을 접목한 글을 연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