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모바일] 모두가 꾸는 꿈

2009. 10. 22


 정은호 (경영학 박사)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TV를 보면서 한가로운 밤시간을 보낸다. 눈을 뜨고 있는 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데 휴대폰이 울려댄다. 070 으로 시작되는 알지 못하는 번호이다. 스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팸영업을 하기에도 늦은 시간인데 싶어 받아보니 대학동기이다. 아주 친했던 사이였고 서로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하면서도 업무상 직접 부딪칠 일이 없다보니 만난지가 꽤 되었다. 친구들 안부며, 주식시장과 관련한 시덥잖은 얘기를 주고받다가 어디냐고 물으니 미국이란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랄리(Raleigh)라는 도시에 일주일간 출장을 왔다가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에 놀러 가게 되어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신번호가 왜 이래? 070이면 뭐야?”

휴대폰에 뜬 전화번호의 사연을 물으니 답변이 흥미롭다.


“그거 몰랐어? 070 인터넷 전화 서울에서 가입한 거, 전화기만 들고오면 외국에서도 국내랑 똑같이 쓸 수 있어. 인터넷만 연결하면 되니까 나는 해외 출장갈 때 들고 다닌다니까. 호텔에서 연결만 하면 국내에서 통화하는 거랑 같아. 요새는 다 이렇게 써,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나만 몰랐었나? 한 순간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 된 느낌이다. 하긴 인터넷망을 이용한 음성통화니까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070 인터넷 전화를 이렇게도 활용하는구나 싶다. 역시 대한민국은 IT강국이라는 하나마나한 얘기와 서울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통화를 마치고 나니 잠이 다 깨버렸다.

필자가 미국에 거주했던 2001년 경에는 한국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공식적인 의사소통이야 이메일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아야 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는 불가피하게 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국제통화료가 무서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국제전화카드를 주로 애용했다. 비교적 싸게 통화할 수 있는 카드(실은 카드가 아니라 금액별로 사전에 배정된 일련번호를 카드모양에 인쇄한 것으로 즉석복권처럼 표면을 긁어내어 고유번호를 입력해서 사용하도록 한 것)를 구입해서 그 금액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통화를 하는 방식이다. 미국내 국제전화 사업을 하는 사업자에게 전화접속을 하고 구입한 전화카드의 일련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통화하고 싶은 국내전화번호를 국가번호부터 입력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 통화보다 준비운동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적법성 여부를 떠나 인터넷전화가 이처럼 해외에 들고나가 사용할만큼 일반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개념을 최초로 소개했던 (주)새롬이 떠오른다. 새롬은 잘 알려진 것처럼 2000년 초 IT버블 당시 코스닥의 대장주로 불렸던 회사이다. 다이얼패드로 알려진 소프트폰(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아 컴퓨터를 통해 전화통화를 하는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여 통신시장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국 수익모델 창출에 실패하면서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회사이다. 중소기업이 아이디어만으로 삼성그룹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사실로 유명했었고, 액면 500원짜리 주식이 30만원이 넘어가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으며, 주가수익비율(PER)이 1,700배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회사이다. 필자 개인도 지인이 30만원에 이 주식을 매수했다가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회사이다. 주식 측면에서는 투기적인 거품이 어떻게 끝나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사업측면에서는 중소기업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결국 다이얼패드의 개념이 헤드셋의 한계를 넘어 현실에서 하드폰의 형태로 구현된 것이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다. 이런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고 이를 이끌어가는 것은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2000년대 초 새롬을 중심으로 한 IT기업들의 변화를 주도한 혁신적인 시도들은 결국 버블로 끝나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결국은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만들었다. 1630년대 튤립 투기로 국가적인 위기를 겪었던 네덜란드실제 투기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개발한 수많은 기술로 화훼강국이 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만다는 것비즈니스에서는 불변의 법칙이다.


일례로 1825년에 시작된 철도사업은 막대한 시설투자를 통한 진입장벽과 수송능력 면에서 경쟁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저가 T형 자동차의 보급과 항공기의 발달로 몰락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수송이라는 서비스’이지 철도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동차나 항공기가 자신들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내비게이션의 GPS라 부르는 위성항법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 GPS)는 본래 미 국방성이 미사일의 목표물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한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은 거의 대부분의 차량에 설치되어 있다. 이를 새로운 용도로 확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것처럼 지나가는 행인의 성별을 인식하여 그에 맞는 광고만을 보여주는 얼굴인식광고 기술도 실용화되었다고 한다. 통신기술을 활용한 생활의 변화도 필자에게는 이미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이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간식도 첨단이다.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면 기프티콘으로 날려달란다. 휴대폰으로 제품의 바코드를 보내주면 실제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방식이란다. 이런 식이라면 미래의 생활패턴이 어떻게 바뀔지는 예측도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신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위한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우리가 꿈꿔왔던 것들을 실현시키고 있고 그 속도도 대단히 빨라졌다는 점이다.


‘혼자서 꾸는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A dream you dream alone is only a dream, but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는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의 말이 와닿는다.

경영학 박사 정은호님은…
재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Chapel Hill에서 연구 활동을 했고, 10여 년 이상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제로인투자자문의 대표를 맡아 투자자문 및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재무관리의 이해>, <선물옵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