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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기타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고개가 숙여진 날

2010.01.04 FacebookTwitterNaver

12월 10일 금요일. 홍보실에서 가는 봉사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겨울은 몸에 남아있는 한 줌의 열기마저 쓸어갔는지, 어제 보다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코트 안에 티셔츠를 겹겹이 입었지만 싸늘한 바람엔 몸을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이라 그런지, 아니면 감질나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한 걸음이 무거웠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춥고 흐린, 약간의 비가 오는 날. 질척질척한 바닥. 습기에 축축한 옷.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금요일 오후.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어딜 가는지는 모르나 모두의 표정은 상기되어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바닥에 큰 장바구니를 둔 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버스는 ‘다음은 서울역입니다.’라는 말을 뱉었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두는 앞으로,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울역에 내려 롯데마트로 달려갔다. 회색이었던 하늘과 바닥과 건물이, 롯데마트 안으로 들어서자 주황색으로 변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라 캐롤이 흘러나왔고, 나를 맞이하는 점원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가운 인사를 받고 들어섰으나, 갑작스럽게 윙윙대는 핸드폰은 날 긴장케 했다. “3층 카운터로 오세요.”라는 말에 “네”라는 짧은 답만 하고는 목적지를 향했다.


카운터에 도착하자 생필품이 수북히 쌓인 몇 대의 카트가 보였다. SKT 홍보실 구성원들은 업무 시간 중에(!) 일하던 복장 그대로 쇼핑을 하러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여성분들은 검은색 니트에 바지, 구두를, 남성분들은 와이셔츠에 재킷, 그리고 구두를 신고 있었다. 몇몇은 카트에 가득 실린 물품을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에 하나하나 올리고 있었다. 


이번 쇼핑(?)은 본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급권 장애우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 하는 연말 특별 자원봉사를 위한 것이었다. 매니저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서 카운터에 물건을 올리고, 계산을 하고, 물품 목록을 손에 쥐어가며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서대문 장애 복지관’ 복지사분에게 이번 봉사활동이 어떻게 이루어 질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앞서간 분들은 아동 팀이구요. 저희는 성인 팀으로 수급권 장애우 다섯가구에 생필품을 전달할 거에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가구의 소득 인정액이 가구별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서울 인구가 약 천만 명인데 그 중 1.95%인, 이만 명이 수급자라고 한다. 수급권자인 장애인들은 1인 가구가 대부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번에 물품을 전달하는 다섯 가구 모두 홀로 사는 분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SKT 홍보실 구성원들이 산 이 물품들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이번 물품은 임의적으로 선정한 것이 아니라 수급자 분들이 직접 요청한 것들을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록엔 수급자 분들의 이름과 물품 목록, 가격까지 상세히 적혀있었다. 박스에 생필품을 하나씩 채워 넣고 테이프로 봉했다. 그리고 박스 위에 앙증맞은 인사말 종이를 붙였다. 이렇게 완성된 박스는 카트를 타고 4층에 주차된 서대문 장애인 복지관의 차량으로 옮겨졌다.


우리는 차를 타고 서대문구에 살고 있는 다섯 장애인 수급자들을 찾아 뵜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모두 내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차는 서대문구 어느 골목에 섰고, 우리는 아래 혹은 위로 물품들을 들고 옮겼다. 문득 ‘그늘이 늘어진 곳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곳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장애우 수급자 분들은 어둡고 외진, 쓸쓸해 보이는 곳에 살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물품을 전달할 때 장애우 수급자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들어와서 좀 앉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사실 나는 뿌듯하기 보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작고 어리고 이기적인 여자아이는 일전에 토익 학원을 끊어 놓고 귀찮아서 안 갔고, 이번 달 핸드폰 비는 10만원에 육박했으며 심지어 오늘, 여러분을 찾아 뵙는 날, 왕 지각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오후 6시, 차는 서대문구 다섯 구역을 돌고 각자의 집에 가까운 정거장에 섰다. “매니저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런 생각했다. 내가 누리는 소박한 일상이 누구에겐 절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눈으로 보고 피부에 닿는 만남 없이 서울시 인구 비율상 수급자가 2%라고 말하는 것은 경박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봉사활동이 나뿐만 아니라, 수급자분 그리고 홍보실 분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보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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