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장비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이유

2010. 02. 02

여기 두 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두 선수의 실력과 스펙은 동일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선수는 장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고 다른 한 선수는 장비에 신경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선수를 뽑는 감독의 입장이라면 둘 중에 어떤 선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동일한 조건에서는 후자 쪽이 덜 까다로워 보이고 편해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전자 쪽을 택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대체 장비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것에 이끌리는 걸까요? 지금부터 천천히 그 이유를 밝혀드리겠습니다.


전장에 필요한 프로들의 ‘넘사벽’ 무기 

장비가 프로스포츠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아이템인 건 아시죠? 올 2월에 열리는 밴쿠버 동계올림픽만 해도 총 86개의 세부 종목 모두 장비가 동원되며 레슬링, 유도, 태권도 같은 격투 종목에도 보호장비가 필요합니다.
스포츠 선수들의 장비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분류되는데 경기의 매개체가 되어 흐름을 유도하는 장비선수들의 몸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보호장비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넓은 범주에서 보는 장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합니다. 그 중엔 ‘설마 이것도 장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외성을 지닌 일명 ‘넘사벽’ 장비들도 있죠.


TV 중계를 보면서 누구나 선수들의 껌 씹는 장면을 한번쯤은 목격했을 겁니다. 주로 농구나 야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인데요, 경기 중에 껌을 씹는 모습이 미관상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껌을 씹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껌의 과학적 효능 때문입니다. 껌을 씹을 때 턱 관절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긴장완화는 물론 저작근을 자극해 두뇌활동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입 속에 침을 마르지 않게 하여 목마름을 방지하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때론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비타민 껌이나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를 씹는 선수들도 있는데 이쯤 되면 껌이 아니라 만병통치약 수준인 것 같네요. 그래도 많이 씹으면 턱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하니 껌 애호가인 선수들은 이점 주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린보이 박태환의 장비는 유행 아이템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박태환이 경기 전 착용했던 헤드셋이 화제가 되면서 대회 직후 동일 제품의 구입처 문의가 폭주하며 불티나게 팔려 나갔었죠. 

 

음악으로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했던 헤드셋이 핫 아이템이 될 줄은 정말 누구도 상상 못한 일이었습니다. 성향이 다른 e스포츠의 경우는 어떨까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e스포츠의 장비는 개인 키보드와 마우스, 마우스 패드, 내부 이어폰 정도인데요, e스포츠 규정상 컴퓨터는 리그 주최측에서 공식 지정한 것을 쓰고 유닛 컨트롤에 필요한 키보드와 마우스, 내부 이어폰은 선수 본인의 것을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연습 때는 하루에 수십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아대로 손목을 보호하는 선수도 있는데 지금처럼 추운 날씨가 지속되면 뭐니 뭐니 해도 ‘핫팩’만큼 유용한 장비가 없다고 합니다. 손이 생명인 프로게이머에게 추운 날씨는 최대의 적, 찬 공기에 손이 노출되면 경직이 돼 컨트롤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경기 전 손을 풀어야 하는 것 만큼 손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네요. 

 ‘얼짱 골퍼’ 최나연 선수도 경기할 때 꼭 착용하는 장비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가 흔하게 입고 다니는 ‘바지’인데요, 평소 하체 콤플렉스 때문에 치마를 잘 안 입는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콤플렉스 보다 치마를 입으면 스윙 할 때와 그린 라인을 읽을 때 신경이 쓰여 집중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경기 때 치마는 절대 사절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의복도 장비가 될 수 있는 장비의 영역 파괴, 알수록 재미있고 신기한 장비의 세계인 듯 합니다.
 
급하다고 아무 거나 쓸 수 있나요? 

 

급하다고 아무거나 쓸 수 있나요? 

가끔 보면 유난스럽다 못해 얄미울 정도로 장비에 집착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런 선수들은 흔히 ‘서툰 목수가 연장 탓 한다’는 속담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스트 임요환’으로 불리는 김택용 선수는 지난해 프로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이례 없이 게임 장비를 공개적으로 구해 화제를 모았었는데요, 그가 공모를 통해 얻은 장비는 ‘로지텍 미니옵티컬 축구공 USB’ 였습니다. 단종된 제품인데다 신품이어야 한다는 옵션을 붙였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공모에 대한 기대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택용은 공모한 마우스를 얻을 수 있었고 그 해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수를 애태우게 한 만큼 제 역할을 톡톡히 한 마우스인 것 같죠?


 



장비는 분신이며 자존심이다! 

우리는 종종 TV에서 한 길만을 걸어오며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40년 전통의 국밥집을 운영하는 할머니의 녹슨 솥현란한 칼 솜씨를 자랑하는 횟집 주방장의 무뎌진 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들의 인생곡선을 보는 것 같은데요, 새 것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먹었으면 일찍이 사라졌을 법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도구를 그들은 쉽게 버리지도, 다루지도 않습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오래된 벗 같은 느낌으로 간직하고 보존하고 또 사용하죠. 

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장에 나간 프로선수들도 최첨단 신무기보다 분신처럼 몸에 익고 편안한 무기를 더 필요로 합니다. 헌 것과 새 것의 구분 없이 선수들에게 길들여졌거나 길들여지고 있는 맞춤형 장비는 ‘프로’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들에겐 분신이고 자존심인 것이지요. 어쩌면 그들은 프로이기 때문에 더 깐깐하고 꼼꼼한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SK선수들을 비롯한 모든 프로선수 여러분의 깐깐하고 꼼꼼한 선택, 앞으로도 기대해보겠습니다.

 

 꿈머굼별머굼(SK텔레콤 스포츠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