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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기타

세월이 흘러 30년 후

2010.05.25 FacebookTwitterNaver




눈을 떴다. 오늘따라 유난스레 밝은 아침인 것 같다. 습관처럼, 침대 옆 선반을 두 번 가벼이 두드린다. 그 소리에 반응한 휴대전화가 반투명의 창을 만들어내 오늘의 일정을 띄운다. ‘오늘의 약속’을 떠올리며 주섬주섬 챙긴다. ‘따르르릉’ 벨이 울린다. 예전 같았으면, 하던 일도 중단하고 전화기 찾기에 급했겠지만 나의 ‘콜’이라는 단답형의 대답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집 안 가득 쩌렁하게 울린다.


“여보세요?” “오늘 약속 있지 않았지?” “응, 근데 장소가 어디랬더라” “아, 장소. 잠시만” 이내 내 눈 앞에 잠시 뒤 내가 가 있을 곳의 지도가 펼쳐진다. “아 여기. 저번에 가봤어, 그래 수고하고 좀 있다 봐” 세상 참 살기 좋아졌다.

휴대폰이라지만 사실 그것을 휴대할 일은 없다. 집에 모셔놔도 되는 게 휴대전화가 되어 버린 요즘이니까. 휴대전화를 구매하면, 따라오는 칩만 내 몸에 장착하면 된다. 그래서 전화든 문자든 내가 설정해 논 신체반응에 따라 받고, 읽을 수 있다. 아침의 일처럼. 나는 목소리로 그 것도 ‘콜’이라는 단어로 설정해두어 전화가 올 때 ‘콜’이라고 하면 통화가 가능하게 된다. 

스피커 설정도 가능해, 집과 같은 개인의 공간에서는 쩌렁쩌렁 울리게도 할 수 있다. 이 기능은 마치 옆에서 대화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건 분명, 어느 외로운 히키코모리가 만들어낸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누구 하나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길. 어제 새벽 늦게 까지 일하느라 제대로 못 자서, 운전하는 게 걱정이다. 이럴 땐 ‘드라이브폰’을 이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예전에는 얼토당토 안 하다며, ‘내 목숨 가지고 장난치자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보다 낫다.
피곤할 때, 급할 때, 다소 격양되어 있을 때 이용하길 추천한다. 화났을 때 폭풍운전으로, 딱지 좀 떼인 사람이라면 가장 강추. 약속 장소인 을지로의 한 음식점으로 설정해두고, 운전석에서 운전자인 나는 눈을 감는다. 휴대폰과 자동차가 만나 이런 사랑스런 기능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우리나라 좋은 나라아아!

약속장소에 도착해보니, 다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눈앞에 물 흐르듯 지나가는 개인의 텍스트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듯하다. “안↘녕↗????” 마치 30년 전 그 때처럼 변함없이 인사하는 나나 받아주는 당신들이나. 여전하다. 

다들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최신 기기들의 혜택을 톡톡히 받는다.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오늘 모임에 바쁜 행사도 나오지 못한 한 사람을 우리는 테이블 위로 부르기로 했다. 어릴 때 순간이동을 꿈꾸곤 했는데, 아 정말이지 아련돋는다. ‘나와라 오바!’
 


책상 위에 그가 놓였다. 푸하, 경직된 저 꼴하곤. 이 사람은 아직 이 문명에 적응이 덜 된 것 같다. 반가이 인사를 하고, 죽었나 살았나 생사를 확인하는데 어느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가스가 위험수치까지 찼다는 것이다. 옆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전화를 하라 그런다. ‘응 어디에? 집에? 아무도 없다잖아!’ 척척척, 잘한다. 오, 신기하게 생긴 저 놈의 전화기를 두드리니 집에 있는 창문이 혼자 열리고 닫히고 한다. 잠을 못 잔 탓인지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가 아프다니, 친구가 자신이 장착하고 있던 휴대전화 칩을 내게 붙인다. 무슨 놈의 전화기가 내 이마의 열이며, 몸 상태를 ‘검진’하고 있다. 붉은 레이저가 온 몸을 비춘다. 아, 이건 내 전화기도 가능해. 라며 전화기를 꺼내는데. 나는 30년 전 그대로 폴더를 쓰고 있다. 아닌데, 이게 아니었는데. 정신이 몽롱해졌다.

“고만 졸아라 좀!” “읭?” 뭐야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아 회의 중이었지. 어쩐지. 헐 이거슨 꿈! 하 다행이다 다 뒤쳐지지 않아서.(와하하~)




용어정리

돋네: 아련돋네, 추억돋네, 개그돋네. 따위로 ‘드립’에 이어 많이 파생되고 있는  
          초딩의 신조어. 그냥 다 갖다 붙이면 됨. 
레알: 어원은 영어단어 ‘real’. 아주 순수하고 정직하게 ‘e’와 ‘a’의 발음을 살려 읽어 
          탄생한 단어. 의미는 real과 같으나 더 강함. 파생어) 레알리[really]

너님: ‘당신’과 ‘너’와 같은 2인칭의 주격대명사로써, 너를 높여주는 미래세기
           극존칭의 개념

      * 전 한글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다음 포스팅에서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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