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랑한다 말하세요. 도구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2011. 12. 26

2000년 후반, 재수 끝에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님께 ‘서울에 가야 큰 사람이 되는 거라고!’ 큰소리는 빵빵 쳤지만, 사실 두려웠습니다. 아빠 엄마도 기세’만’ 등등한 겁쟁이 딸을 걱정하시는 눈치였죠.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서울… 매캐한 연기가 ‘서울 생활, 만만치 않을꺼다!’ 라고 하는 듯했어요. 다섯 평 남짓 작은 방을 구해 소꿉놀이 같이 자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보니, 제 이름 석 자만 덩그러니 나오네요? 혼자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어요. 늘 가족과 함께하다 혼자 사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조미료 듬뿍, 달달하고 싱거운 서울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살도 많이 빠졌고요.



그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도 편하다’라는 학생 신분이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요즘 기본이라는, 소위 ‘스펙’도 열심히 쌓고, 아르바이트에, 바쁜 대외활동에, 적지만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어요. ‘원래 잘 웃던 나였는데…’ 힘에 겨울수록 점점 까칠해지는 나 자신을 느꼈지만, ‘원래 타향살이가 다 그런 거 아이가…’ 애써 나를 달래며 노력해 원하던 직장을 잡을 수 있었어요.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죠. ‘거봐. 하면 된다 아이가! 나 쫌 멋있네?’ 거만한 생각도 들었어요.


얼마 후, 집으로 한 통의 우편물이 날아왔어요. ‘건강보험증’… 하얀 종이에 가족들 이름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어머니에게 “원래 가족들은 이쪽에 이름이 다 적혀 있는 거야?” 하면서 묻기도 했던 그 건강보험증이었습니다. 어릴 적, 아빠 이름부터 엄마, 나, 동생이름까지 순서대로 적혀 있는… 기차 같은 건강보험증의 맨 앞에 덩그러니 제 이름만 적혀 있었어요. 이젠 제가 기차의 맨 처음이 된 거죠.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며… 지금까지 기차를 끌어오시며, 제가 방금 느낀 부담을 몇십 년 동안 감내해 왔을 아빠 얼굴이 생각났어요.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무슨일이고, 우리 큰 딸!’ 아빠 목소리에 쑥쓰러워 말을 잇지 못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말해야 하는데…


전화, 카톡, 문자… 뭐가 됐던, 먼저 말하세요. 사랑한다고…


2011년도 그 마지막을 보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늘 세상을 혼자 산다고,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썰렁한 집의 문을 혼자 열고, 혼자 밥을 먹는다고 투덜댔었습니다. 그렇지만 내 주변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친 나에게 늘 힘을 주었던 귀여운 연인, 늘 걱정하고 반찬도 챙겨주시고 하던 친척 어른들, ‘동기’라는 이유로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늘 뒤를 받쳐주던 대학 동기들, 자주 보진 못했지만 늘 ‘나’라서 믿음이 간다던 고향 친구들, 그리고… 더는 말이 필요 없는 가족들.



연말연시, 따뜻한 불빛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마워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  문자든, 카카오톡이든, 전화든, 편지든… 수단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가오는 연말연시… 그 분들께 꼭 전하세요!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쵸리 (SK텔레콤 블로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