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의 금빛 물살, 7월 런던 올림픽을 가르다

2012. 06. 04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한 다섯 살 소년은 어느새 태극 마크를 단 국가대표 수영 선수로 성장했다. 가늠하기조차 힘든 0.01초를 앞당기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에너지를 뿜어내는 청년. 오는 7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아시아는 물론 세계 수영 역사까지 새롭게 써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는 박태환, 그를 만나다.


이게 다 박태환 선수 덕분이다. 7월 개막하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 전문가들이 메달 예상 종목으로 ‘수영’을 점치게 된 것 말이다. 박태환 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이다. 수영 불모지로 변방에 있던 대한민국 선수가, 수영선수로서는 단신에 속하는 신장 183cm의 조건으로, 그것도 불과 열아홉의 나이로, 아시아인 최초 400m 자유형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박태환 선수가 이룬 가장 큰 쾌거이다. 무엇보다 이는 올림픽 금메달이 단순히 한 사람의 영예나 국가의 자부심이 아닌 ‘가능성’과 ‘도전’에 대한 ‘희망’으로 덧입혀지는 순간이었다.

행복 파트너! 그가 웃으면 SK도 웃는다!

SK텔레콤은 지난 2007년부터 박태환 선수를 공식 후원해오고 있다. 온 국민이 그의 역주에 환호했지만 SK텔레콤 스포츠단에게 그의 금메달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간 SK텔레콤은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박태환 전담팀’을 구성하고,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는 등 박태환 선수가 최고의 환경에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왔다. 박태환 선수에게 ‘행복날개’를 달아준 셈. 여기에 ‘SK 가족’이라는 든든한 서포터까지 더해졌다.

경기에서의 강인한 모습과 달리 귀엽고 순수한 이십대 청년 박태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SK텔레콤 광고는 국민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SK와 함께한 지 5년 차, 이제 런던올림픽이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금메달을 외치겠지만 우리만큼은 그저 최선을 다하라는 염원을 갖고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 박태환, 그가 어떤 결과를 내더라도 그동안 쏟은 그의 땀과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연소 국가대표 박태환의 쓰디쓴 고배

사실 박태환 선수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결코 만만치 않은 굴곡을 넘어서고야 지금에 자리에 올랐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04년, 대한민국 선수단 가운데 최연소로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주목받은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400m 자유형 예선에서 실격되는 쓰디쓴 고배를 마시고 만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 제대로 겨루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내려와야 했던 경험은 사춘기 10대 소년으로서는 쉬이 감당하기 힘든 패배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태환 선수는 이 뼈아픈 경험을 역전의 발판으로 제대로 밟고 올라선다. 한때 물안경 자국만 빼고 새까맣게 그을린 박태환 선수 어린 시절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처럼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타고난 승부사 기질과 승부욕은 연습 또 연습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다음 해인 2005년, 대한민국 신기록을 여섯 개나 갈아치우는 기록을 세웠고,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 게임에서는 무려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세계 무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박태환’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7년에는 그 여세를 이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아시아 기록을 1초 42 앞당기며 1위에 오른다. 올림픽을 불과 1년 앞두고 거둔 세계대회 1위. 대한민국 수영 최초 올림픽 금메달의 가능성을 고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베이징올림픽, 드디어 금메달이다

드디어 2008년, 벼르고 벼른 베이징올림픽이 박태환 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는 물론 최초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지며 박태환 선수에게 주목하는 시선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아졌다. 연일 그의 컨디션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었다. 안팎의 소란스러움에 박태환 선수는 ‘자기와의 싸움’에 몰두했다. 부정 출발에 대한 트라우마나 대한민국 최초라는 부담감을 떨치는 것 역시 중요했다.

드디어 자유형 400m 경기가 열리는 8월 10일. 출발 신호와 함께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고 3분 41초 후, ‘03:41:86’이라는 전광판을 보고 짜릿하게 환호한다. 금빛 단상에서 눈물 대신 웃음으로 화답하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더 큰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 이를 증명하듯 박태환 선수는 자유형 200m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민 마린보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와의 싸움, 이제 세계 신기록을 향해

하지만 올림픽 이후 부담감이 컸던 탓일까?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 예선 탈락이라는 고배를 다시금 마시고 만다. 하지만 박태환에게는 고비를 넘어본 경험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100m, 200m, 400m 금메달을 휩쓸며 박태환의 귀환을 또렷하게 알렸고, 2011년 상하이 세계수영 선수권대회 400m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지난 2월 열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스테이트(NSW) 오픈대회에서도 3관왕에 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제 런던올림픽이 남았다. 컨디션을 조절하며 강도 높은 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박태환은 늘 그렇듯 ‘자신과의 싸움’을 강조했다. 그리고 ‘세계 신기록’이라는 의미심장한 출사표도 잊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 올림픽 도전에 나서는 마린보이 박태환, 그의 나이 이제 만 23세다.

박태환 선수에게 듣는 올림픽 출사표 “7월, 모두에게 행복 전하는 결과로 답하겠습니다!”

최근 9주간의 호주 브리즈번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이번 훈련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요.

그동안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효과적인 턴을 익히고 잠영거리를 늘려나갔습니다. 훈련 중 뉴사우스웨일스(NSW) 스테이트 오픈 챔피언십에 참가해 1,500m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지구력 훈련에 중점을 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신기록은 선수에게 항상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결과라 생각하고 훈련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런던올림픽까지 이제 100일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비한 지난 훈련 과정은 어땠나요? 이번 올림픽에서의 목표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너무나도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 훈련밖에 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지만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저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뛰어넘어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최고로 꼽는 경기는 무엇인가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경기입니다. 수영은 어릴 적부터 제 삶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수영을 시작하면서부터 꿈꿔온 게 올림픽 금메달이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었으니 선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올해 런던올림픽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훈련과 대회로 이어지는 선수 생활에서 가장 고된 점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마린보이’의 길을 걷길 참 잘했다고 생각되는 때는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저 자신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외로움이 가장 힘듭니다. 제가 보기보다 내성적이고 말수도 적은 편이거든요. 하지만 저를 통해 국민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 성취감도 크고, 수영 선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인의 행복은 역시 여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SK와 인연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박태환 선수에게 ‘SK’란 어떤 의미인가요? 더불어 SK 구성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SK에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SK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저를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잖아요. SK 역시 큰 울타리 같은 느낌입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최선을 다해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