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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작가의 사진 칼럼] #19. 순간의 미학, 결정적 순간 포착하기

2012.11.20 FacebookTwitterNaver

“사진은 영원을 밝혀준 바로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1952년 출간한 그의 불어판 사진집 제목, 재빠른 이미지(Images a’ la sauvette)가 영문판으로 출간되면서 The Decisive Moment(결정적 순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사진집 이후 많은 사진가들의 작품 창작에 영감을 주면서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은 사진가들에게 하나의 키워드이자 아이콘화된 이미지가 되었다. 흔히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나 사진가의 기술에 의해 빠르게 포착된 스냅 사진 정도로 알고 있는 이가 많지만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렌즈가 맺는 상(像)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고 하였다.

브레송은 뉴스 중심의 사건, 사고를 다룬 사진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에서 발견한 삶의 리얼리티를 포착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그의 따뜻하고 놀라운 순간 포착은 스냅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또 그의 사진 이후에 많은 사진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지금 이순간에도 전 세계의 사진가들이 거리의 사진(Street Photography)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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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면 굉장히 좋은 카메라나 렌즈를 사용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브레송이 주로 사용했던 카메라는 라이카의 수동 카메라와 50mm 렌즈였다고 한다. 라이카 카메라로는 한 장을 담을 때 마다 와인더를 돌려야만 하고 노출은 수동으로 맞춰야 한다. 또 렌즈의 초점은 수동 초점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 보다 수십배 느린 카메라였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를 눈의 연장선에서 다루기 위해 무수히 많은 연습을 통해 AF 보다 더 빠르게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지금 여러분이 사용하는 카메라가 기술적으로 훨씬 진보했고 사용자의 노력만 더한다면 더 좋은 더 결정적인 순간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삶의 향기가 진하게 베어나는 절묘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또 주의해야 할 점은 없는지 이번 강좌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카메라를 눈의 연장선에서 다루어라

여러분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처음 할 일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가 우선 몸의 온 감각을 열어 놓고 세상의 모습들을 관찰하는 일이다. 촬영하기 전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두고 찍는 순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렌즈는 몇 mm여야 하고 찍은 때 카메라는 세로로 촬영할 것인가 가로로 촬영할 것인가? 혹시나 찍고 나서 저 사람이 싫어하진 않을까?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물론 이 많은 상황과 설정들은 경험치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익혀지지만 처음엔 상상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는 훈련을 한다. 정말 나는 준비가 되었는가?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한다면 카메라를 들어 촬영해 본다. 무엇을 담나? 적당한 조리개 값과 노출 값을 주고 있는가?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해 보면 잘 되지 않는다. 왜일까? 바로 카메라를 몸처럼 다루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게 된다. 순간을 결정적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찍히는 사람조차 모르게 촬영할 수 있도록 스스로 카메라를 눈의 연장선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브레송은 심지어 자신의 방에서도 초점을 빠르게 맞추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여러분의 카메라와 친해지는 일. 연습엔 왕도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카메라가 부족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난 브레송이다. 난 브레송이다. 난 브레송이다….”

카메라를 언제나 준비된 상태로

좋은 순간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든다. 카메라 전원을 켜고 렌즈 뚜껑을 빼고 조리개를 세팅하고 파인더를 보고 허둥지둥하다 보면 이미 순간은 지나간 과거가 되어 버린다. 결정적 순간을 찍고자 하는 사진가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렌즈 캡을 씌워 두는 것, 그리고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 넣는 일, 카메라의 전원을 꺼두고 다니는 일이다. 가능하면 렌즈 후드도 빼놓고 줌 렌즈 보다 가볍고 눈에 띄지 않는 표준 단렌즈를 사용한다. 카메라를 언제나 준비 상태로 두고 어떤 순간을 발견했을 때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다룰 수 있도록 카메라를 언제나 준비 상태에 두어야 한다. 여러분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학교, 회사, 집에서 흔들리지 않고 촬영할 수 있는 조리개 수치와 ISO는 어떻게 되는가? 빠르게 뛰어가는 사람, 그림자와 빛이 공존하는 상황에선 노출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 찍고 나서 확인하는 것보다 찍기 전에 머리 속에 데이터가 들어와 있어야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내 눈이 반응하는 시간과 카메라를 조절하는 시간차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항상 촬영하는 습관, 항상 생각하는 습관이다.

무대를 선택하고 배우를 기다린다

사진을 담으려고 무작정 걷기도 하지만 어떤 장소가 선택되면 그 장소에서의 행운으로 바라며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연극 무대에서 배경을 세팅한 뒤에 배우가 등장하듯 사진을 담기 좋은 적당한 장소가 발견되었다면 극적인 순간을 기다려 본다. 걷다 보면 느낌이 오는 장소가 있다. 빛도 좋고 배경이 단순하다던가 컬러해서 마음에 든다던가 또는 단색이어서 대상에 집중될 듯 하다던가. 이런 장소에는 반드시 좋은 순간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오길 기다리는 일은 미련한 일이다. 장소가 발견되었다면 파인더를 통해 화면을 구성해 본다. 빛에 따른 컬러의 느낌, 대상이 순간적으로 나타났을 때 촬영할 프레임 등을 미리 상상해 둔다. 물론 촬영 전 몇 컷 담아 LCD로 확인해 보며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더 좋다.

빛과 색과 형태의 조화를 읽어라

좋은 빛은 좋은 색을 만들고 좋은 형태를 만들고 좋은 사진을 만든다. 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 대상을 돋보이게 하는 주변의 피사체, 시선을 집중시키는 조형미, 빛과 그림자의 강약, 반복되는 패턴, 일상 속의 비일상을 느끼게 해주는 느낌, 형태와 내용의 조화 등 사진을 촬영하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빛과 색, 형태의 조화를 읽어 그것을 사진 속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자주 다니는 길목, 사람들이 분주하게 마주치는 사거리 등에서 어떤 질서와 규칙을 찾아 보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진 속에 표현할 것인가? 사진을 찍는 일은 복잡한 세상 속의 균형미를 찾는 일이다.

인물 초상권의 문제, 윤리적인 문제

인물을 촬영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과거에는 초상권에 관한 개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인물을 촬영해 사진집을 내거나 전시를 하는데 있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는 개인의 인권, 사생활 노출 등이 문제가 되면서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인물을 촬영할 때 이런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첫 번째 내가 촬영하는 사진이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두 번째 내가 촬영한 사진을 블로그나 인터넷 등 다수의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공간에 배포해도 될까? 세 번째 사진의 내용을 살폈을 때 윤리도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소지가 없을까? 네 번째 내가 촬영한 사진을 상업적으로 사용했을 때 어떤 문제가 될까? 다섯 번째 혹시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내가 촬영한 사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첫번째 부터 다섯번째 질문까지 다 둘러 봐도 사진가에게 유리한 질문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내가 촬영하는 사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인물이 들어간 사진을 담아야 한다는 것. 초상권을 피하고자 마냥 뒷모습이나 그림자만 담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매번 촬영할 때 마다 그 사람에게 가서 허락을 득한다면 리얼리티가 사라질 것이다. 사람을 촬영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물론 이 모든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거리의 생생함, 삶의 모습을 담는 일에 사진가가 처음 할 일은 용기를 내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멀리서 촬영하는 도둑 촬영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진가들이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거리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결정적 순간은 카메라가 좋다고 해서 또는 찍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문에 여러분의 마음을 한발짝 들여 놓는 일이 바로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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