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히스토리#1. 응답하라 삐삐와 PCS! 이동통신의 조상님이 궁금해~

201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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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히스토리 #1.
응답하라 삐삐와 PCS!
이동통신의 조상님이
궁금해~

요즘 쌀쌀해진 날씨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핫초코처럼 따뜻하게 해 주는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응답하라 1994’입니다. 어쩐지 빛바랜 느낌의 화면부터 주인공들의 친근한 모습까지 눈을 뗄 수가 없는데요.

그 중에서도 눈을 뗄 수 없던 장면들은 ‘삐삐’가 등장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배경음악을 깔아 놓고 인사말을 녹음하던 나정이와 쓰레기, 그리고 엄마에게 직접 하지 못하는 말들을 삐삐에 녹음하던 칠봉이까지! 마치 당장 전화기를 들어 이들에게 삐삐를 쳐야 할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었죠~

하지만 1994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대들!
“삐삐? 그게 도대체 뭐임? 먹는거임?” 할지도 모르죠 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SK텔레콤 블로그의 야심찬 프로젝트~ 응답하라 1994부터 현재까지, 뒤돌아보면 순식간인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모바일 세계의 변화를 한번 돌아볼까요?

1004에게 8282를 외치다! 삐삐의 추억

삐삐?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당장 한 마디로 설명하기 참 애매한데요, 사전에서 ‘삐삐’의 정식 명칭인 ‘무선호출기’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은 정의가 나옵니다.

무선호출기
호출 전용의 소형 휴대용 수신기. 수신기에 가입자 번호를 부여하여 그 번호를 누르거나 돌리면 부호화되어 신호 전파가 기지국을 통하여 발사되어 수신음을 내거나 숫자를 표시한다. [비슷한 말] 호출기.

1982년 12월 국내에 처음 보급된 무선호출기는 처음에는 기업들의 사업용 통신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요, 1990년부터 개인을 대상으로도 서비스가 대중화되었습니다. 삐삐 하면 역시 012! SK텔레콤의 전신, 한국이동통신의 012 삐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죠~ 🙂

이 삐삐는 1992년 4월 보급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 1백만 명을 돌파했고, 1993년에는 가입자가 2백만 명에 달하며 무선호출기의 황금기가 열리게 됩니다.
1995년 11월에는 8백만 명을 돌파하며, 세계에서 4번째로 무선호출기 가입자가 많은 나라가 될 만큼 당시에도 이동통신의 열기는 정말 뜨거웠습니다~

이 삐삐는 저렴한 가격과 휴대성 때문에 성인들은 물론,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었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팬클럽 삐삐에 녹음된 가수들의 목소리 들으려 전화하던 기억, 좋아하던 여자친구에게 음성메시지로 수줍게 고백하던 기억, 다들 한번쯤 있잖아요~

특히 숫자에 의미를 담아 메시지를 전하는 ‘삐삐 약어’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추억의 삐삐 약어 중 몇 가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볼까요?

추억의 삐삐 약어

▶ 129129 난 지금 몸이아파 (아이구아이구)
▶ 151155 그립다(1V1155 -> MISS)
▶ 79337 친구야 힘내!
▶ 17175 일찍일찍와
▶ 11010 흥 (숫자를 세로로 보면 ‘흥’이라는 글자 모양)

이렇게 삐삐가 청소년층에 큰 인기를 끌면서 각 이동통신사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를 다양하게 개최하기도 했는데요,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역시 SK텔레콤의 012 콘서트죠~

사진출처 : raybm.blog.me/130074717145

H.O.T, 젝스키스 등 당시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 총출동했던 스피드 012 콘서트는 청소년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단순한 콘서트에 그치지 않고 학교폭력예방 기금 1천만 원을 모아 기부하는 등 뜻깊은 일도 함께 실천하는 의미있는 자리이기도 했죠~

1995년에는 무선호출기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해졌는데요, 이렇게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가능한 단말기는 무려 17만 원 선인데다 정해진 메시지만 이용할 수 있는 불편함 때문에 그리 활성화되지는 못했습니다.

PCS로 열렸다! 휴대폰의 전성시대

이 삐삐의 전성기는 거의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는데요, 삐삐에서 개인 이동전화로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1997년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 개인휴대통신)이 출시된 것이죠. 이는 1996년 우리나라에서 CDM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가능했던 것이었답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동전화 사업은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에서 셀룰러(Cellular) 폰을 서비스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셀룰러 폰과 PCS 폰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구요?

사실 PCS와 셀룰러 폰은 전파와 기지국을 바탕으로 한 이동전화라는 것에서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1997년 당시 기존에 800MHz 전파를 이용하던 이동전화와, 새롭게 1.7GHz 전파를 할당받아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이동통신사들이 차별성을 두기 위해 이름을 PCS로 정한 것 뿐이죠.

이렇게 PCS가 출시되면서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단말기의 등장으로 이동통신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PCS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만에 588만 명이 가입한 것은 물론, 1999년 말에는 가입자가 1천만 명을 돌파하며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1명은 이동통신을 이용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품질이 다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벽이 있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도 금방 잡음이 생기고 통화가 끊기던 PCS와 달리, SK텔레콤의 011은 어디서나 빵빵 터지고 깨끗한 통화품질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011 = 프리미엄 이동통신’이란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누구나 사용하고 싶은 이동통신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죠~

그리고 PCS를 통해 이동통신이 대중화되면서 휴대폰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삼성전자의 ‘애니콜’LG정보통신(현 LG전자)의 ‘싸이언’ 현대전자의 ‘걸리버’ 등이 있었습니다.

1997년 방영된 현대전자의 PCS 단말기 ‘걸리버’ 광고 중 한 장면

사실 애니콜이란 브랜드는 1994년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요, ‘한국지형에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내 최초 CDMA 폰, 플립형 폰 등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출시되었던 PCS 단말기들, 지금 보니 이것이 그냥 전화기인지 휴대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투박하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인기 휴대폰들이었다는 거죠~

1997년 출시된 애니콜의 디지털 휴대폰 SCH-200F (왼쪽), PCS 폰 SPH-1100 (오른쪽)
출처 : 엔하위키 미러

이렇게 무선호출기로, 또 PCS로 변화를 거듭하던 모바일 세상은 ‘세기말’이라 불리던 1999년이 되면서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맞이하기 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주, 2탄에서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