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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칼럼] 스마트 시대의 또 하나의 생활상, 번역

2017.03.16 FacebookTwitterNaver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소통이 단절될 때 좌절과 불행감을 경험한다. 최신 통신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용자들이 기대를 품고 몰려드는 배경에는 더 빠르고 손쉬운 연결에 대한 근원적 욕망이 있다. 그 연결 욕구의 뿌리는 더 많은 소통을 향해 뻗어 있다. 하지만 말을 나눠도 소통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번역은 단절된 소통을 잇는 도구다. 고도의 인간 능력으로 여겨졌던 통역과 번역이 인공지능 시대에 마침내 기계의 몫이 되고 있다. 신경망과 머신러닝 방식의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번역은 인류가 바벨탑 이전으로 돌아가 언어의 장벽 없이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마저 낳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2012년 “번역 프로그램 덕분에 언어 소통의 불편이 사라지면 서로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 심지어 전쟁까지 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마트 번역은 어떤 미래를 가져올 것인가.

기계번역은 냉전 시기인 1950년대 미국에서 러시아의 과학기술 문서를 빨리 해독하려는 의도에서 조지타운대학과 IBM의 공동 연구로 본격 시작됐다. 미국 정부가 10년 넘게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사람의 번역보다 정확하지 않고 시간도 돈도 훨씬 많이 든다는 결과만 얻은 채 연구는 실패 선언을 했다. 오랜 기간 진전이 없었던 이 연구는, 1988년 IBM이 기존의 구문론・의미론 학습 방식의 번역 대신 통계 방식의 접근법을 채택함으로써 기계번역의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 통계방식의 기계번역은 데이터 증가와 컴퓨팅 능력의 발달과 함께 점점 정확도를 높여왔는데, 최근 인공지능을 적용한 결과 전문 번역가 수준에 버금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업그레이드된 구글 번역은 딥러닝을 활용한 신경망 방식과 다국어 학습의 결과를 대상언어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데이터가 부족해 정확도가 떨어졌던 한국어-영어 번역의 품질을 크게 개선시켰다.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터키어 8개 언어 조합에 우선적으로 개선이 이뤄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화상통화 서비스를 하는 자회사 스카이프에서 영어-스페인어 등 일부 언어의 자동통역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언어에 대한 네이버의 파파고 앱 역시 인공지능을 활용해 뛰어난 품질의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라인의 실시간 한국어-일본어 번역 기능은 두 언어 사용자들이 각자의 언어로 채팅을 하면 상대국 언어로 알아서 번역해주는데 이는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다.

인공지능 번역기술로 우리는 더 이상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않고 외국인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외국어 문서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을 맞을 수 있을까. 우선 외국어 학습법과 평가 방법은 달라지게 된다. 실제 사용빈도 낮은 어려운 단어를 외우거나 평가하던 기존의 학습방식과 시험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번역 기술이 곧바로 외국어 학습 무용론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인간에게 언어의 기능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로 인한 불편을 없애기 위한 선구적 시도로 국제에스페란토 운동이 있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 라자루스 자멘호프가 언어 장벽을 뛰어넘고 인류 평화와 공영을 위해 고안한 쉽고 편리한 언어체계다. 하지만 에스페란토 운동은 국제연맹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나치 독일과 소련 등으로부터 사회 전복을 꿈꾸는 위험한 언어로 여겨지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 출처 : 네이버 책 <이방인>

기계번역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외국어와 언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2014년 국내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번역 논쟁이 있었다. 소설의 평범해 보이는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Aujour’hui, mama nest morte)”는 번역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번역하면 작품 전체의 정서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약성서>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는 구절은 2,000여 년 전 히브리인들의 주식에 대한 정서를 ‘밥’,’떡’,’빵’,’음식’ 중 무엇으로 번역할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아무리 기계번역이 개선된다고 해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기계번역 품질의 개선은 우리에게 어떠한 목적과 필요를 위해 외국어를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래는 지식정보 사회이기 때문에 일상적 환경에서 누가 더 고급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인터넷 정보 대부분은 영어이고 글로벌 지식사회의 공용어도 영어이다. 필요한 경우 기계번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1차적 접근 능력과 판별 능력을 지니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또한 외국어 구사능력은 해당 언어 사용자와의 소통 확대와 문화 이해의 도구로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이처럼 외국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스마트폰 앱이나 번역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면 외국어 학습 대신 좀 더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도 좋다.

자동번역 시대는 편리함 너머 우리에게 언어의 본질을 묻는다. 자동번역은 우리에게 어떠한 언어능력, 외국어 능력이 필요할지를 묻는다. 외국어 구사를 외부에 의존하는 환경에서 진짜 중요한, 아웃소싱할 수 없는 언어능력은 무엇일까? 언어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사고와 표현이 이뤄지는 인간의 본질적 능력이다. 그리고 인간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에 모호하고 부정확하다. 굳이 시적・문학적으로 쓰이지 않더라도 ‘별’,’길’,’바람’과 같은 하나의 단어가 가리키고 상징하는 영역은 광활하다. 인간 언어의 모호함과 융통성은 기계번역에서는 골칫거리이지만, 인간에게는 소중한 영역이다. 단어마다 그 뜻과 대상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면 수십억 개의 세부적인 고유단어가 필요하고 사람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자동번역이 아무리 발달할지라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마트 번역이 막혀 있던 소통의 걸림돌을 상당 부분 없애겠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은 그의 언어를 통해서 그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한다는 말이고, 이는 여전히 상대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소통방식을 통해서일 것이다.
본 칼럼은 SK텔레콤 사보 <Connect+> 3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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