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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4.0문제, 함께 풀어야 답 나온다

2017.04.28 FacebookTwitterNaver

온통 4차 산업혁명 얘기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회장 클라우스 슈바프가 지난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 일기 시작한 ‘불’이 두 달 뒤 알파고를 만나 장작불로 세를 불리더니, 이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센 들불로 변해 이 땅의 산과 들로 번지고 있다.

그 사이 미래창조과학부는 지식정보사회를, 산업통상자원부는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외친다. 급기야 부처의 맏형이라는 기획재정부는 올해 초 4차 산업혁명전략위원회까지 구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당선되면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사실 다급할 만도 하다. 한국경제의 대표 주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비틀대고, 20세기 한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조선업은 빈사 상태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연간 19조 원에 달하는 세계 1위 수준의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는 제대로 된 성장엔진 하나 못 만들어낸 지 오래다. 모두들 위기감, 아니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차에 세상이 신기술로 또다시 급변할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이 몰려온다고 하니 어찌 아니 다급해질까.

발 빠르게 ‘혁신의 장’ 마련한 독일

4차 산업혁명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스위스 다보스포럼이 아니라 독일에서 시작됐다. 2012년 독일 정부가 ‘인더스트리(industrie) 4.0’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기술혁신정책이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독일 제조업체들이 구글과 아마존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밀려 어려울 때였다.

독일의 대표적 연구소 막스클랑크와 프라운호퍼의 수장들이“우리는 연구자들이 (독일을) 떠나고 싶게 만들고 있다”“우리는 신산업 개발에 제공할 게 없다”와 같은 말들을 쏟아낼 때였다. 이 땅에서 익숙히 들어본 말들이다. 독일은 혁신이 필요했다. 새로운 성장엔진이 나오지 않는 국가 싱크탱크, 경쟁력을 잃어가는 제조업체. 모두 절실했다.

독일 정부가 먼저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이름의 혁신의 장을 깔았다. 하지만 주체는 정부가 아니었다. 세계적 자동차부품업체 보쉬와 공학한림원에서 총괄 작업을 하고, BMWㆍ지멘스ㆍ도이체텔레콤ㆍ다임러ㆍ지멘스ㆍSAP 등 독일 주요 대기업과 연구기관들이 참여했다. 미국 IT 기업들의 세계 산업 생태계를 휘어잡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독일의 자동차회사들이 세계를 리드하고, 지멘스와 SAP의 주가가 계속 상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일 제조업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인더스트리 4.0의 힘이다.

대표적 사례가 아디다스다. 이 회사는 지난 수십 년간 운영해오던 동남아 공장을 철수하고 올해 초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안스바흐로 돌아왔다.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만드는데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6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해야 했지만, 안스바흐에서는 노동자 10명이면 충분하다. 인공지능과 로봇ㆍ빅데이터를 활용한 ‘스피드 팩토리’ 덕이다. 다보스포럼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독일의 이런 변신을 보고 ‘4차 산업혁명’이란 이름으로 폼나게 표현했다.

‘로봇천국’ 대한민국, 일자리 문제 어떻게 풀까?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유튜브에 뜬 아디다스 독일 공장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을 자아낸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몰아낸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야 할까. 변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져 굶어 죽을 판인데, 변하면 일자리를 잃어 역시 굶어죽을 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으로 향후 5년간 514만여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땅의 어느 대선 주자도, 어떤 행정부처도 아직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대량실업과 노동현장의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다. 산업용 차원에서 한국은 이미 ‘로봇천국’이다. 2015년 기준 고용인원 1만 명당 로봇 보급현황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금액환산 기준 531대를 기록, 2위 싱가포르(398대)나 일본(305대), 독일(301대)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미국(176대)의 3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전략의 일환으로 중소기업마저 제대로 공장 자동화를 해보자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스마트 팩토리다.

독일은 어떨까. 그들도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이 달랐다. 4월 초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노동(Arbeiten) 4.0(일자리4.0)’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제목의 국제콘퍼런스가 열렸다. 독일에서 대학교수와 산별노조 간부 등 4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그들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발표 이후,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사라지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를 노ㆍ사ㆍ정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말 ‘노동 4.0(일자리4.0)’ 백서를 만들어냈다.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약 1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지구 상의 어느 나라처럼 형식적인 공청회나 위원회를 거쳐서 수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이 백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다섯가지 원칙으로 ①누구나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하며 ②누구에게나 안전하고 직업적 발전이 가능한 노동에 편입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③경직된 노동 유형 대신 다양한 노동 유형을 받아들이며 ④노동의 질을 보장하고 ⑤기업과 노동자 등이 함께 논의하는 공동 결정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 같은 독일의 혁신 움직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 4.0(일자리4.0)과 인더스트리 4.0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데 노ㆍ사ㆍ정이 인식을 같이했다는 점이다. 인더스트리 4.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동 4.0(일자리4.0)과 함께 가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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