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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新JOB] 로봇 시대, 인문학자가 중요한 이유

2017.10.31 FacebookTwitterNaver

글로벌 피자 체인인 도미노피자는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피자 배달 로봇의 도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후, 올해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습니다. 일본에선 지난 8월부터 빨간색의 귀여운 초밥 배달 로봇이 일부 거리에서 시범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미국은 올해 초 버지니아주와 아이다호주가 일반 도로에서 무인 자율배송 로봇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앞으로는 거리에서 사람보다 로봇을 먼저 만나고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일부 병원, 공항, 마트 등에서는 로봇 안내원들이 등장한 상태입니다. 2018년 이후에는 가정에도 서비스 로봇이 보급돼 1가정 1로봇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이제까지 로봇 연구는 공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기계 설계, 컴퓨터공학, 전기·전자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카메라, 레이저 센서, 동작 제어 등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고 첨단화하는 것이 주된 미션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셜 로봇이 대중화되는 인간-로봇 공존 시대에 이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만약 로봇이 혼잡한 도로에서 “실례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틈새로 빠져나간다거나, 반대편 보행자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휙 지나친다면 심한 불쾌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도우미 로봇이 외롭다고 말하는 노인에게 “바쁘다”고 응답하거나, 문제를 못 푼 아이에게 “넌 아직 멀었어”라고 말한다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로봇이 인종차별, 성차별하거나 스스로 판단해 누군가를 공격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공학만으로는 로봇-인간 공존 해법에 한계

때문에 심리학, 윤리학, 사회학, 철학, 언어학 등 인문사회학이 로봇 분야로 들어와야 한다는 요구가 높습니다. 공학자들만으로는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온전히 그려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봇 심리학자, 로봇 사회학자, 로봇 언어학자, 로봇 윤리학자, 로봇 철학자 등이 더욱 필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이는 직업 관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트렌드입니다. 로봇에게 ‘시민권’과 ‘전자인’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를 고려하면, 기존 직업의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유럽보다 국내 움직임은 아직 미미합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지난해 로봇을 사회학 관점에서 풀어간 <로봇 사회학>을 펴낸 것이나, 최근 로봇윤리연구회가 꾸려져 로봇 윤리와 법제 문제에 관해 워크숍이 열린 것 등이 그나마 손에 꼽히는 흐름입니다.

이런 가운데 꾸준히 로봇을 연구해 온 인문학자가 있습니다. 2010년 이후 지속해서 로봇을 탐색해 온 최준식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입니다. 국내에서 2~3년 이상 로봇에 관심을 둔 인문사회학자가 드문 상황에서 최 교수는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원래 최 교수의 관심 분야는 쥐의 행동 실험을 하는 뉴로 사이언스였습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로봇 심리학자로 불리는 것은 사양하고 있습니다. 사실 로봇 심리학자는, 영화 <아이, 로봇>에서 로봇 창시자인 래닝 박사가 살해되자 경찰 수사에 도움을 주는 수잔 캘빈 박사의 직업명으로 등장할 뿐, 아직 자신을 로봇 심리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로봇에 관심이 많았고, 2010년 이후 진행했던 여러 로봇 프로젝트 경험을 보유한 최 교수에게 ‘로봇 심리학자’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2010년부터 로봇에 관심, 그리고 꾸준한 연구

최 교수가 연구자로서 로봇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10년 연구년으로 간 워싱턴대에서 로봇을 통한 쥐의 공포실험을 진행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는 레고 마인드스톰을 이용해 만든 간단한 로봇이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2012년에는 로보링크와 함께 로봇-동물 상호작용 실험을 위한 전용 로봇을 직접 만드는 등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이 같은 작업은 2013년 1월 개최된 한국인지 및 생물심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로봇 속의 심리학’을 국내 처음으로 발표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최 교수는 이 자리에서 로봇학과 심리학의 공통된 역사적 배경을 거론하며 심리학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로봇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로봇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당시 상황에서 앞선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 교수는 로봇 업체들은 물론 김진오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 등 공학자들과도 다양하게 접촉하는 등 인문학자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심리학자 중에서 공학자들과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건 저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로봇에 관심도 많았고 심리 실험을 하기 때문에 과학용어를 많이 알기 때문이죠. 사실 쓰는 언어가 다르면 몇 마디 하다가 바로 막히고 논의를 이어가기 어렵잖아요.”

말 그대로 최 교수는 토크, 서보, 액추에이터 등, 로봇 분야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인문학자들은 알기 힘든 로봇 전문 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연구실 책상에는 아마존 에코, SK텔레콤의 누구(NUGU), 구글 홈 등 스피커형 인공지능 비서가 다 갖춰져 있고 각 제품의 특장점을 줄줄이 읊기도 합니다.

로봇 청소기를 써보면서 청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짧은 대화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스몰톡 기능이라는 것을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자 가운데 누군가 먼저 로봇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이런 기질을 가진 얼리어댑터 최 교수가 1호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노후를 위한 로봇 연구

최준식 교수가 2015-2016 프로젝트 결과물로 개발한 노인들을 위한 로봇 ‘아우(AOU)’

최 교수는 2015년과 2016년에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로봇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고령층의 역동적이고 건강한 노후 삶을 위한 로봇의 다양한 쓰임새를 파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치매, 활동력 등 신체적인 건강 관리는 물론 기억력 증진을 통한 인지 기능 측면, 외로움, 고립감, 우울증 등 정서적인 건강까지 고려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자금을 지원했고 시니어 센터, 디자인 전문가 등과 제휴해 로봇 ‘아우(AOU)’를 만들어냈습니다.

로봇 하드웨어만 뚝딱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가령 우리나라 노인분들은 의료보험이 잘 돼 있어 관리도 잘하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하죠. 특히 젊어 보인다, 기억력이 좋다 등의 칭찬이나 반응에 꽤 신경을 씁니다. 로봇을 설계할 때 이런 부분을 반영해야죠. 가령 ‘당신의 신체 지수는 비슷한 나이 중에서 상위 10%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주면 훨씬 더 열심히 하게 되거든요. 일본의 로봇 파로나 아마존의 에코 등에도 엄청나게 많은 심리적인 요소들이 반영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로봇, 인공지능 제품을 보면 기능적으로만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후속 프로젝트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지난 8년의 연구는 로봇 심리학이 무엇을 다뤄야 하고,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체험적으로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최 교수는 로봇을 연구하면 할수록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독특하고 어떻게 유사한지를, 로봇이라는 상호작용 대상을 통해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는 기회가 되면 엉뚱한 일을 벌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카페든, 음식점이든 로봇을 피고용인으로 두는 1호 기업을 운영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봇과 일반인들이 소통하는 방법도 탐색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심지어 고용주로서 의미 있는 사회적인 이벤트를 벌이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미래에 필요한 직업, 로봇 심리학자

최 교수는 “앞으로 로봇 분야에서 심리학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이 로봇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로봇 연구는 심리학의 영역을 확장할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적 기회와 가치를 제공하므로 젊은이들이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강조합니다. 심리학을 하면서 로봇에 관심을 가져도 좋고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이 심리학 쪽으로 넘어와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아직 공학자와 심리학자 간 공동 연구가 다양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융합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 교수의 언급처럼 해외에서는 이미 로봇 연구가 기술 일변도에서 탈피하고 있습니다. MIT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에티켓을 가지고 자율 주행하는 로봇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사회적으로 인지된 내비게이션(socially aware navigation)’으로 명명된 이 기술은, 궤적 기반이나 반응 기반이 아닌 사회적 규범 기반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사회 심리적 기법이 적용됐습니다. 프랑스 툴루즈대학의 경우도 복잡한 도로에서 차례로 보행하거나 잠시 기다리는 등의 매너를 갖춘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융 정보를 다루는 미국 마켓워치는 올해 펴낸 보고서에서 로봇 심리학자를 미래 유망직업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로봇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면서 로봇의 학습 패턴을 조정하는 역할에 로봇 심리학자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주 UTS대학의 매직 랩을 운영하는 매리앤 윌리엄스 교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로봇은 기능적으로 엄청난 역량을 가진 것이 아니라 카펫 청소를 할 때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집어달라고 부탁하거나 필요할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로봇”이라며, “사람의 관심을 끌어내고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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