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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찬란하身 안토니 가우디

2017.11.08 FacebookTwitterNaver

▲ 하나의 큰 돌처럼 설계된 바르셀로나 까사 밀라(Casa Mila)

인터넷 포털이나 여행 책자에서 바르셀로나를 찾다 보면,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안토니 가우디(1852~1926)입니다.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인데요. 유명 건축가이자,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위인 안토니 가우디. 그의 철학과 열정이 베여있는 건축물을 볼수록 가우디의 명성에 공감하게 됩니다.

▲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_안토니 가우디

많은 위대한 건축가들 사이에서 가우디의 건축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조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의뢰인과 자신의 철학(그의 인생 후기에 갈수록 그의 신앙심)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노력한 건축가였습니다.

특히 집중해야 할 부분은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그가 강조한 자연이라는 모티브 때문에 그의 건물들은 ‘태초부터 존재했었던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 구엘 단지 지하 성당의 입구의 모습

그렇다면 그가 유독 자연이라는 모티프에 초점을 맞추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그의 외로웠던 소년기에 있다고 추측합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몸이 허약하고 발육이 더딘 탓에 그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것은 나무와 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를 메꾼 새들과 물, 조약돌 등 자연이었습니다. 그의 선천적 재능과 더불어 자연에서 기른 그의 관찰력과 섬세함이 그를 위대한 건축가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 해변에 위치한 팔마 대성당(Palma Catedral)

그의 숭고한 자연 사랑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구엘 단지 지하 성당의 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계단이 들어갈 위치에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거목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공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가우디는 “우린 고작 며칠이면 계단을 완성할 수 있지만, 저 나무는 수십 년의 세월이 만든 자연의 작품이다.”라는 말과 함께 설계를 변경했습니다.

불같은 성격과 고집이 센 가우디였지만, 그는 진심으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특히 의뢰인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작품으로써). 그는 설계를 진행하기에 앞서 의뢰인의 직업과 그의 미적 성향, 건축을 의뢰한 목적을 철저하게 파악했습니다. 특히 그의 오랜 친구 에우세비 구엘(1846~1918)의 의뢰에는 가우디의 배려가 많이 보입니다.

▲ 구엘의 후손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공원

가우디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조력자이자, 오랜 친구 에우세비 구엘은 다방면의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입니다. 그는 박람회장에서 우연히 한 작품을 보고 가우디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죽을 때까지 인연을 이어갑니다.

구엘은 축적한 부를 통해 명예와 위상을 높이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가우디를 통해 실현됐습니다. 가우디는 구엘이 의뢰한 건축에 용과 헤라클래스를 통해 구엘을 빗대어 묘사하고자 했고, 빨라우 구엘에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20개가 넘는 설계 시안을 만들며, 자신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차갑고 딱딱한 외관을 만들었습니다.

▲ 빨라우 구엘, 후면 파사드

가우디는 빨라우 구엘에 추후 권력의 실세들이 방문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보수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러한 가우디의 계산은 건축이 완성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방문한 왕족들과 구엘 모두 놀라게 했습니다.

▲ 빨라우 구엘(Palau Guell), 2층 홀에서 천장을 보았을 때

가우디는 자신의 고객에 대해 깊이 고찰했습니다. 또한, 그는 나이가 들수록 깊어진 신앙심을 표현했는데요. 그의 표현방식은 놀랍도록 섬세하고 정교합니다. 신에게 이르는 길을 묘사하고자 내부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계산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밝아지는 구조를 설계하거나,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 십자가가 보이게끔 입체적 십자가를 설계하거나, Maria 라는 글자를 거꾸로 적어 하늘에서 제대로 보이게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가우디의 삶에서 신앙심이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가우디가 병약했던 시절을 보낼 무렵 언제나 포근히 감싸주셨던 분이었으며, 그녀의 사랑으로 힘들었던 소년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 성가족성당은 여전히 공사 중이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이 될 예정입니다

가우디는 사랑하는 가족이 차례대로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에 실패하여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아픔은 신앙을 통해 치유되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13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위대한 건축물 ‘성가족성당’을 통해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70m 높이를 자랑하는 성당의 모든 인물 조각들이 아래에서 보았을 때 같은 크기로 보일 수 있도록 한 설계와 정확한 조각을 위해 죽은 아이의 시체에 석고를 부어 틀을 떠내는 그의 치밀한 완벽주의는 사람들이 경탄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언젠가 성가족성당을 방문하신다면 성당 지하 예배당에 잠들어 있는 가우디에게 축복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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