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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말보다 빠르다, 롤드컵을 빛낸 김태웅 속기사 인터뷰

2017.12.18 FacebookTwitterNaver

▲ 속기사의 상징, 3벌식 키보드를 들고 있는 김태웅 속기사

뜨거웠던 2017년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을 기억하시나요? 롤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롤드컵은 재미있고 각별한 행사일 것입니다. 이번 롤드컵에 선수 못지 않게 주목받은 분들이 있는데요. 롤드컵 경기 관전의 재미를 청각장애인과 나누고자 아프리카 TV에 실시간으로 자막을 올린 속기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어떤 훈훈한 사연이 숨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속기사라는 직업의 매력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보시죠.

롤드컵을 사랑하는 속기사의 생생한 자막 생중계

▲ 인터뷰 중인 김태웅 속기사

SKT Insight: 2017 롤드컵 당시, 온라인상에서 속기 중계로 맹활약을 펼치셨죠. 청각장애인을 위해 ‘속기’로 중계를 하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됐나요?
저는 지금 AUD(Auditory Universal Design)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이곳은 청각장애인들과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이고, 누구든 듣는 것으로 인한 불편함이 없이 디자인된 사회를 추구하는 곳이죠. 이곳에서 문자통역사 직원으로 일하던 이형렬 파트너와는 서로 게임 취향이 맞아서, 롤을 같이 하거나 롤 대회를 같이 보던 사이였어요. 롤드컵 결승 며칠 전, 형렬이 형이 “우리 속기사인데 자막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해보는 게 어때?”라고 하셔서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참여했죠.

SKT Insight: 롤드컵 당일엔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롤드컵 당일 날에는 대회 시작 3시간 전부터 집 근처 PC방에서 만나 문자통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어요. 롤드컵 중계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들을 키보드에 미리 상용구로 지정했고, 우리가 치는 채팅을 화면에 송출하기 위한 작업도 했어요. 함께하는 작업이다 보니 합도 맞춰봤고요. ‘조금 일찍 만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덕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 속에 그리던 대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SKT Insight: 속기사님이 느낀 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롤의 어떤 매력을 청각장애인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롤은 똑같은 경기가 두 번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바둑과 비슷해요. 롤의 매력을 한 가지로 정확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바둑처럼 경우의 수가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매력이 있는데 그만큼 이것을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설명을 하는 해설의 재미도 크거든요. 청각장애인 혹은 주변 상황 때문에 소리를 듣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이런 재미를 자막으로 나누고 싶었어요.

SKT Insight: 속기사님의 롤 티어는 어떻게 되나요? 주 포지션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플래티넘(상위 4.9%에 해당)이고, 제 포지션은 주로 정글이나 서포터예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거든요.

SKT Insight: 롤을 잘 하시는군요.
아닙니다. 제 파트너인 이형렬 속기사의 티어는 무려 ‘다이아’예요. 상위 1.62%에 속하는 분이시죠. 그 분의 주 챔피언은 피들스픽입니다.

▲ 김태웅 속기사가 아프리카 TV에 속기로 중계한 롤드컵 영상

SKT Insight: 게임 용어나 드립도 그대로 속기하세요? 중계를 위해 유행어 공부나 게임도 따로 하시나요?
될 수 있으면 속기록에는 속기사의 주관보다는 객관적으로 들리는 대로 내용을 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보시는 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아니면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해요. 중계 방송을 보다가 유행어나 은어 같은 말이 나오면 검색하기도 하고요. 중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순수하게 궁금해서요.

SKT Insight: 롤드컵 도중에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잖아요. 게임 중 중요한 전투 장면에서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말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럴 때 어떻게 처리하시는지요?
해설자들의 말이 겹치는 경우에도,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독성을 위해 하던 말은 끝까지 마무리 지은 뒤에 그다음 내용을 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버리는 말이 많은 거 같기도 해요. 일단 말의 소리가 커지고 빨라지면 저도 무의식적으로 급해지니까요.(웃음)

SKT Insight: 롤 게임엔 챔피언도 다양하고, 각 챔피언마다 스킬이나 이름도 모두 달라요. (ex: 공허의 무리, 신비한 화살, 용의 분노 등) 스킬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순간적으로 오타를 낼 가능성도 있을 텐데, 이것을 모두 숙지하시나요?
이형렬 속기사님과 저도 준비하면서 우려했던 부분이에요. 다행히도 둘 다 롤을 5년 넘게 플레이했고, 중계도 5년 넘게 들었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아요. 특히 키보드에 손을 대면, 평소보다 열심히 듣는 버릇 같은 게 있어요. 음질이 아주 나빠서 못 듣는 경우가 아니라면, 경험에 따라 잘 풀어나가곤 해요. 다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나 단어는 상용구로 넣어둬서 대비하는 편이에요. 저희 둘 다 자막방송 출신이라 오타에 강박관념이 있어서, 오타는 될 수 있으면 안 내려고 하는 편입니다.

SKT Insight: 롤드컵 중계를 듣다보면 농담 같은 드립이 많이 터지잖아요. 하지만 농담은 듣는것과읽는 것의 뉘앙스가 다를 수도 있어요. 캐스터와 해설자의 말투나 억양 또는 웃음소리에서 나오는 재미란 게 있으니까요. 이런 뉘앙스는 어떻게 속기로 살리시는지요?
롤 중계를 보면서 그런 뉘앙스를 느끼고 웃어보신 분이라면, 텍스트(속기 중계)를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던 분에게라면 음성에서 나오는 다채로움을 텍스트로 100% 전달하기는 어려워요. 들리는 그대로 ‘적는’ 게 아니라 ‘표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부호랑 괄호를 이용해 제 표현력의 한도 내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용준 캐스터님이 “결국 5경기를 갑니다.”라고 말씀하시면, “결국… 5경기를… 갑니다… (시무룩)”이라는 식으로 중계하고요. 웃으면서 말씀하시면 “오늘은 2:0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가져갑니다!(웃음)”이런 식으로 말이죠.

SKT Insight: 롤드컵 중계를 속기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댓글이나 경험이 있으신가요?
보람뿐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시작한 부분도 컸어요. 몇 명 안 볼 수도 있었겠지만, 많은 추천과 댓글들을 보면서 ‘나쁘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누군가를 지적하기는 쉬워도, 칭찬하기는 어렵잖아요. 저희가 올린 글에 추천과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청각장애인분들이 채팅에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재밌게 봐주셔서 저희도 감사합니다.

정보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공유하는 직업, ‘속기사’의 매력

SKT Insight: 롤드컵으로 시작하게 된 인터뷰이지만, 속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속기사는 평소에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소리가 오가는 모든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속기사 종류를 두 부류로 나누면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해서 치는 것과 들리는 대로 치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들리는 대로 치는 곳은 법원, 검찰, 경찰 등 증거와 관련된 부분이에요. 가독성을 고려해서 치는 곳은 대학교, 행사, 레퍼런스 등이 있어요.

SKT Insight: 사람의 말을 받아 적고 기록하는 일이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몇 시간 동안 듣는 일이잖아요. 속기하다보면, 말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도 하나요?
속기를 하다보면 10명 가운데 2명은 말씀을 잘 하세요. 속기해도 독자들이 이해 못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냥 들리는 대로 치면 되거든요. 그런데 영어 문장을 번역한 것처럼 어렵게 말씀하실 경우엔, 독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저 또한 생각을 하고 다듬으면서 속기를 해야 하거든요. 10명 중 말 잘 하시는 2명에게 때로 감탄해요.

SKT Insight: 10명 중 말을 잘 하는 2명의 특징이 궁금하네요. 속기사님이 생각하는 ‘말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예요?
말을 빨리 하면서도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못 본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의 빠르기를 조절해야 할 것 같고요. 목소리 톤이 일단 일정하세요. 목소리에는 강약 조절도 있고요.

▲ ‘한컴타자 최대몇?’이라는 질문에 승부욕을 발휘한 김태웅 속기사의 한컴타자 실력

SKT Insight: 한컴타자 최대몇?
어제 집에서 해봤는데 간단하게 400자 치는 정도는 1,100타 정도 나오는 거 같아요. 오자는 1개가 나왔어요. 그런데 뭐 속도보다는 얼마나 정확하게 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서… 속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SKT Insight: 속기사 분들만이 쓰시는 언어나 줄임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가지고’라는 말은 ‘그래서’로 바꾸고, ‘계란’은 고유어인 달걀로 고쳐 써요.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있는 ‘콜라보레이션’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컬래버레이션’으로 쓰고요. 발화자의 말이 너무 빠르다거나 이해하기 어려우면, 요약을 하거나 가독성이 좋도록 다듬기도 하고요. 그것 외에는 크게 달리 쓰는 언어는 없어요.

▲ 김태웅 속기사가 뉴스 기사를 속기하는 모습

SKT Insight: 속기사의 키보드는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보통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키보드는 2벌식이에요. PC방에 가면 있는 것, 아시죠? 속기사는 3벌식 키보드를 사용하는데요. 이것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보통 2벌식은 ‘각’을 입력할 때 ‘ㄱ’, ‘ㅏ’, ‘ㄱ’ 이렇게 순서대로 치잖아요. 그런데 속기사용 3벌식은 ‘ㄱ’, ‘ㅏ’, ‘ㄱ’을 한 번에 눌렀다 떼면 ‘각’이라는 글자가 나와요.

그리고 약어를 추가할 수 있어요. ‘ㄴㅂ’를 누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나오는 식으로요. 또 약어 기능을 이용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더라고요’, ‘-고요’, ‘-데요’ 등 ‘-요’체를 가장 빨리 칠 수 있어요.

SKT Insight: 평소에 피아노를 잘 치시나요? 손가락 힘(!)이 좋으실 것 같아서요.
‘떴다 떴다 비행기’는 잘 칠 수 있어요.(웃음)

SKT Insight: 평소에 손 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타자를 두드리다 건초염에 걸리곤 하는데, 손과 손목을 많이 쓰는 속기사님이라면 손 관리에 더 신경을 쓰실 것 같아요.
쌀포대를 옮기는 것만큼은 힘든 일은 아니지만, 발화자의 말 속도가 매우 빠를 경우 속기할 때 힘들 때가 있거든요. 이럴 때는 50분 정도 치고 10분 휴식하는 게 다인데, 첫 번째 50분의 시간을 키보드를 책상에 올려놓고 쳤다면 두 번째 시간은 무릎에 키보드를 놓고 친다던지… 한 자세를 유지해서 몸의 피로감을 높이는 것보다는 조금 자세를 바꿔서 몸의 피로를 분산시켜주는 게 중요한 거 같네요.

SKT Insight: 속기사에 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을 위해, 속기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알려주시겠어요?
키보드 배틀하면 다 이겨요. 농담이고요.(웃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속기를 하는 게 재미있어요. 리듬게임할 때 틀리지 않고 콤보가 늘어날수록 재밌듯이, 속기를 하다보면 소리보다 늦게 시작된 타이핑이 소리를 따라잡을 때 희열을 느껴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문자로 기록해서 잡아두고,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해요. 롤 중계를 기록함으로써 소리를 접하기 힘든 사람들도 실시간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고, 중계를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실 수도 있으니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SKT Insight: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일주일 정도 뒤면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될 거 같은데요. 혹시 속기사가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서울 소재의 속기사가 필요하신 모든 분들, 저는 실시간 속기 누적 500시간 가까이 되는(웃음), 속기사 김태웅이라고 합니다. 정부 기관도 환영입니다! 그리고 저희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과 자막이 필요하셨던 분들께,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SK텔레콤 소속 롤 프로게이머 페이커 굿즈를 들고 있는 김태웅 속기사

지금까지 롤드컵을 빛낸 김태웅 속기사와의 인터뷰를 보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롤의 재미를 청각장애인과 함께 나눠온 김태웅 속기사에게 다시 한번 응원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사진. 전석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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